‘수미산 여행사’
수미산 여행사를 들르는 손님들은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알려진 수미산처럼 엄청난 여행사가 되겠다는 초대 사장의 꿈이 담겨 있어서 촌스러운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여행사는 주인이 바뀐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곳은 일반인들에게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자주 출시하는 곳이라고 여행사라고 알려졌지만 사실 주 고객들은 인간이 아닌 다른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여행사를 주로 이용하는 손님들은 시간 여행 유전자를 보유 중인 인간과 영력이 높은 신선, 요괴, 영물, 신수 등의 존재들이 많았으며 아주 가끔 몇천 년 정도에 한 번씩 신들이 방문했다.
“백두산 여행 상품은 동났다고 여러 번 말씀드렸잖아요. 새로운 상품은 내년이나 되어야 새로 출시될 예정이니 포기하고 이만 돌아가세요!”
직원의 짜증스러운 대꾸에도 포기하지 못한 손님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직원용으로 빼둔 자리 있잖아요! 전 정말 이 패키지 예약이 필요해요! 대기 명단에라도 올려주세요. 제발요!”
“아니 그렇게 절실했으면 선착순으로 어떻게든 예약했어야죠! 특가 상품이라고 떡하니 붙여뒀는데 마감된 걸 내놓으라면 당연히 안 되죠!”
오늘의 진상으로 당첨된 여자 손님은 자신이 얼마나 이 패키지 예약이 필요한지 열정적으로 랩을 늘어놓으며 말을 끊을 기회를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늘어놓았다. 이미 판매 완료된 상품을 추가할 능력 따위는 없는 여행사 직원 도대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화에 반쯤 정시 퇴근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다.
“저렇게 절실한데 한 자리도 없는가? 너무 안타깝네그려. 정 안되면 내 자리라도 양보 합세.”
옆에서 들려온 동아줄 같은 이야기에 오늘의 진상은 사양 한번 없이 냉큼 미끼를 물었다.
“저 어르신이 양보한대요! 이제 예약할 수 있는 거죠?”
기어코 백두산 패키지 특판 상품을 거머쥔 손님은 행복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돌아갔다.
“선신선 어르신! 남의 업장에서 영업방해 하시면 곤란합니다.”
“허허, 내가 무슨 영업방해를 했다고 그러나? 난 곤란해 보여서 내 자리를 양보한 것뿐인데.”
“백두산은 신선님 사는 곳이잖습니까. 저분은 이제 우리 손님이 되었으니 함부로 손대시면 곤란합니다.”
“내가 무슨 손을 댄다고! 저자가 백두산의 신령한 기운을 듬뿍 받아서 좋은 기를 만들면 서로 좋은 것이지. 그리고 저렇게 목표를 위해 끈질긴 인내심이 있는 인간은 사소한 시련 정도는 금방 극복할 테고. 세상에 대가 없는 선의는 없는 법, 호의를 받아들였으면 시련도 받아들이겠지. 어험!”
신적인 존재들에게 장사할 수 있는 가게가 왜 인간들을 상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었지만, 인간들은 이 여행사에 꼭 필요한 존재였다. 그들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영기를 쌓을 수 있었는데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이 영기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인간들의 방문은 여행사를 운영하기 위한 필수 요소였다. 인간에게 질 좋은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가지는 만족감이 클수록 좋은 영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인간은 육체와 영으로 구별되는 개인의 본질적인 부분이 각각의 다른 세계에 속해있는 독특한 존재였다. 영혼의 힘은 생명력, 에너지, 의지 등으로 이루어져 신체를 넘어설 수도 있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세상은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지고, 시간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도 인간들이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은 원래도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시련을 겪으며 더욱 발전하고 변화되는 존재였다.
육체와 영혼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낸 자들에게는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극복한 고난과 괴리감의 격차에 따라 영혼에 시간의 흔적이 새겨졌는데 이것이 시간의 파편이었다.
시간의 파편은 인간 영혼의 강력함을 나타내는 척도를 알려주는 것이었다. 강한 시간의 파편을 보유한 세계는 그만큼 더 견고하고 오래 그 세계를 유지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한 세계를 다스리는 신들은 시간의 파편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을 모으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시간의 파편 수거는 인간과 세상 둘 모두에게 이득이었다. 보유자는 파편을 내어줌으로 인해 여태껏 자신을 괴롭히던 문제에서 벗어나 그 가치에 따라 삶이 평탄해지고 윤택해졌으며 시간을 거둬 간 세상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해졌다.
다만 시간은 끝없이 흘렀고 인간이 삶을 이루어 존재하는 공간은 그대로라 시간의 파편이 인간 생의 어느 부분에 존재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인간 삶의 찰나에 존재하는 시간의 파편을 찾는 일은 오랜 생을 사는 특별한 존재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들은 인간에게 고난을 주고 그것을 극복한 자들에게 성공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내렸다.
신적인 존재는 그 자체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동화가 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들은 가질 수 없는 여러 가지 특별한 능력과 세상의 법칙에 대해 알게 되지만 삶의 변화를 멈추고 발전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더 이상 스스로의 변화는 생기지 않고 생명체의 변화만 관찰할 수 있는 존재였다. 또한 그 특별한 능력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자체가 세상의 법칙에 속한 흔적과 같은 존재였다.
다만 신선, 잡신, 영물, 요괴, 도깨비 등 신력을 쌓아서 인간 위치에서 벗어나거나 세계의 법칙을 거스름으로 인해 신력을 쌓게 된 존재들은 신에 가깝지만 진짜 신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점점 더 세상과 동화되어 스스로 존재가 흡수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인 시간의 파편을 모아 유한한 삶을 선택할 기회를 얻기 위해 파편 모으기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수요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뒤로하고 특별한 존재들의 시간 여행은 제법 인기가 있었다.
시간 여행자라고 정의되는 존재들은 대다수가 인간과 신적인 존재들의 혼혈을 일컬었다. 보통의 인간들은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는 그 힘을 깨닫지 못하고 잊혔지만, 간혹 신들의 유전자가 발현된 그들 중에서도 특별한 인간들은 영력을 쌓아서 신선에 도전하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차원과 시간선을 떠나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새로운 세계에 정착할 수 있는 허가인 거주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여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미약하지만 신의 힘을 이어받은 존재가 차원의 문을 넘어서 새로운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다스리는 신에게 그 존재를 허락받아야 했는데 그 조건 중의 하나가 영력을 쌓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서 시간의 파편을 모았다.
수미산 여행사는 그러한 파편을 찾아 헤매는 자들의 원활한 여행을 돕는 곳이었다. 여행사의 수장은 잡신이거나 영물이 아닐까라고 특별한 손님들에게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은 동서남북의 각 방위를 지킨다는 사천왕 중 북방을 지킨다는 다문천왕이었다. 겉으로는 여행자들을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업무는 타 차원의 허가받지 않은 존재가 문을 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방어하는 세계의 문지기였다.
수미산 여행사의 사장 천다문은 세계가 생겨났을 때부터 북방 문을 지켜온 존재였지만 한 번도 허가받지 않은 존재가 이곳으로 차원 문을 들어온 적이 없었고 당연히 그 철벽의 문이 뚫리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자신했지만,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라 사방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북방 신이라고 해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다른 문도 아니라 하필 북방 문으로의 진입이라 천다문은 신으로 존재한 이후로 처음 겪는 끔찍한 일로 인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