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지만 시미나의 상황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세상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별처럼 반짝거리는 야경을 배경으로 낮만큼 반짝거리는 아-유 지구의 밤은 활기가 넘쳤고, 18층 휴게실에서 보이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 삼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주변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남에 대한 소문 이야기였다. 이 거대한 센터에서 절대 만나지 않을 팀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이런 일이 시미나의 팀에서 벌어졌는지 한탄이 나올 따름이었다.
" 그런데, 미나씨 한테 모런씨가 고백 안 했어?? 나 이번일 들었을 때 혹시나 하기는 했거든~. 물론 미나씨가 훨씬 아깝기도 하고, 내가 미나씨 성격 아니까 설마 하기는 했는데...." 선한인의 수다가 길어지고 있었고, 그녀의 육감에 시미나는 소름이 돋았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시미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 에이, 아니에요. 왜 그런 생각을... , 모런씨가 저한테 고백 일이 딱히 없지 않아요? " 시미나의 질문에 선한인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 아니 그걸 어떻게 몰라? 한동안 모런씨가 시미나씨 뒤만 졸졸 쫓아다녔잖아. 미나씨만 몰랐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였는데. 미나씨가 넘어갈 거 같지 않다, 남녀 사이는 또 모르지 않냐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 많이 했어. “ 전혀 짐작도 못한 이야기에 당황한 시미나는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 저는 전혀 몰랐는데요. 그리고 그건 모런씨가 초반에 적응을 힘들어해서 제가 설명을 해주느라..." 시미나는 자기도 모르게 모런의 변명을 해주며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기의 것도 아닌 남의 연애 전쟁에 티끌만큼도 발을 들이기 싫었다. 그게 어설픈 삼각관계면 더더욱 그랬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녀의 이야기가 언급된 것만으로도 화가 날 지경이었다.
" 알지, 미나씨 알아듣기 쉽게 설명 잘해주는 거, 나도 도움 많이 받았는데 왜 모를까. 근데 그런 거랑 다른 느낌이 있었다니까. "
시미나는 별다른 존재감 없이 지내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귀차니즘 환자라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잘 옮기지 않는터라 생각과는 다르게 센터에 근무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그녀에게 여러 소식을 전해주고는 했다. 선한인도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자신의 가설을 풀어놓느라 시미나의 표정이 기이하게 씰룩대는 것은 알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선한인의 의심은 타당했으며 올바른 방향이었다. 실제로 단번에 차단당하기는 했지만, 모런은 시미나에게 고백했었다. 시미나는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담소에서 아무에게도 이 사실은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시미나와 모런 둘만 아는 비밀로 남았지만 말이다. 모런의 행동거지를 보면 한 번씩 짜증이 나서 입이 근질거릴 때가 있었지만, 정말로 아무 감정도 없는 모런과 함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가는 것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이 고백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이제 미리드와 실제로 사귀게 된 모런이 미치지 않고서는 이 일에 대해 입을 놀릴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소문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 크기 때문에, 처음에는 산들바람같이 존재감 없이 시작했더라도 태풍처럼 커지기 마련인 것을 시미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모런은 이런 시미나의 관심 없음을 멋짐으로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시미나는 이 상담소에 일을 하기 전까지 남자들이 대다수인 업종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과 잘 지냈고 나쁘게 말한다면 잘 다루는 편이었다. 윽박지르기, 달래기, 칭찬하기, 해결해 주기 등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사용해 어떻게든 뺀질거리는 자들의 일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갖췄는데, 그러다 보니 남자들은 시미나와 대화하는 것을 편하게 느꼈다. 매우 직접적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시미나는 보통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 객관화가 부족한 편이었는데, 자기가 여성스럽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시미나가 조용하고 별로 대화를 즐기지 않더라도 한 번씩 던지는 대화 속에서 그녀가 생각보다 주관이 강하고 아는 것이 많으며 당당한 타입인 것을 쉽게 깨달았다. 삶의 흔적은 우울증에 빠져있는 무기력증 환자라도 쉽게 가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모런이 시미나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일단 모런과 시미나와의 대화는 별 일없이 늘 매끄러운 편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야기라고는 거의 해보지도 않고 일 이야기만 줄곧 하다가 뜬금없이 받은 모런의 고백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시미나를 짜증 나게 했었다. 그녀의 마음의 소리는 모런의 고백에 대해
' 장난쳐? 내가 만만해? 나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다고 고백을 해! ' 라고, 줄곧 소리쳤지만, 시미나는 사회적인 관계를 고려해 부드럽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 저, 남자친구 있어요. "라고…
사실 시미나에게 모런은 별 관심 밖의 존재라 거절하고도 별생각 없이 이전과 똑같이 지냈지만, 자기가 고백한 여자한테 썸 타기를 시도하다가 문제 생긴 여자에 대한 서러움을 하소연하는 것은 개념의 문제였다. 시미나는 세상에는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센터에서 그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첫 사람이 아무런 관심 없는 모런이라는 점은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미나는 모런의 고백을 다른 말로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남자 친구의 존재에 대해 밝힌 것은 모런이 호기심으로 그녀 남자친구의 존재를 계속 질문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인 것을 깨달았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내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스쳐 지나갈 존재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예전에 이런 건 참 잘 맞췄는데 “ 라는 선한인의 이야기에 시미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 시미나가 대답하자, 선한인은 거의 끝나가던 수다를 다시 시작할 듯 맹렬하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 미나 씨 남자친구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뭐 하는 사람이야? 얼마나 만난 거야? " 폭풍처럼 쏟아지는 선한인의 질문에 시미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불편하게 느껴지던 개인적인 질문이 다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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