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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통하는 상담소 8

누군가의 구구 절절한 억울함과는 상관없이 세상은 잘 돌아갔다. 여전히 바쁘고 정신없고 혼란했다.
 
시미나는 익숙한 듯 또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일 처리를 위해 문의하는 사람들도 비슷한 듯 다른 반응을 보였다. 불특정 다수가 문의를 위해 전화하는 것은 여전했지만, 업무 처리가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는 고객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정말로 띄엄띄엄 오는 행운의 날인 듯했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퍽'하고 의자를 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이 상담소의 최고 문제아 중의 하나인 나프니아였다.
 
'또, 너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시미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사과 한마디 없이 지나갔다.
 
'재 오늘 왜 저래 진짜! '라는 생각만 하고 상대하기를 포기했다.
 
나프니아는 정말이지 더러워서 피할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기분이 나쁠 때면 주변을 걸을 때도 쿵쿵거리며 자신의 기분을 드러내고, 벨 소리를 최대한도로 키워서 전화가 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옆자리에서 어떤 통화를 하든지 상관없이 욕하고 큰소리 내고(물론 본인의 상담자에게는 들리지 않게 한다),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을 주변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춥다고 욕설을 내뱉으며 꽝꽝 닫았으며... 아무튼 할 수 있는 모든 행패는 혼자서 다 했다.
 
시미나는 입사 이래 나프니아와 한 번도 대화하지 않았었고, 여러 차례 나프니아에게 당한 경험으로 인해 외면하는 선택지를 선택했으나 모런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는지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져 있었다.
 
모런은 화성 원주민과 IC342 은하군 소속 로스볼라그 행성 원주민 혼혈로 덩치가 크고 근육질에 가까운 몸에, 머리도 좀 크고 피부도 두꺼운 편이었다. 머리 크기가 크면 뇌 용량이 커서 똑똑할 것이라는 일반적인 속설과는 전혀 다르게 단순한 편이었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로스볼라그 출신 팀원이 매우 예민하고, 덩치와는 다르게 근육이라고는 없고, 엄청난 천재였던지라, 그쪽 종족 출신들이 똑똑할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던 시미나의 생각은 모런을 만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 이런 종족 차별적 생각은 그만둬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디어가 만든 종족별 편견은 쉽게 바꾸기 힘들었다. 여하튼 모런은 두 종족 혼혈답게, 파랑과 녹색이 오묘하게 섞인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옛날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오크를 좀 닮은 생김새였다. 그런 생김새로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시미나는 정말이지 심장이 튀어나오게 깜짝 놀라서 주춤거리며 물었다.
 
" 왜…. 왜 그래요?"
 
" 나프니아씨 진짜 왜 저래요? 제가 뭘 그렇게 잘 못했다고! " 모런은 덩치와는 다르게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톤을 가졌는데, 정말이지 몸과 매치가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시미나의 놀란 마음은 조금 진정이 되었다.
 
" 나프니아씨 원래 저런 성격이지 않았어요? " 이번에도 모런은 딱히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모런의 하소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전화가 오기를 바랐지만 역시 이번에도 고객들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
 
모런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들으면서도, 모런은 그렇지만 나는 왜?라고 옆자리에 앉아있다가 뜬금없이 나프니아와 모런에게 동시에 괴롭힘을 당한 시미나는 생각했다. 모런의 괴롭힘은 그녀의 휴식 시간 전까지 주기적으로 계속되었다. '역시 고객이 괴롭히지 않으니 다른 쪽이 괴롭히는구나!' 완벽한 날은 없는 법이라고 시미나는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시미나는 휴게실에서 맛있는 간식이나 먹으면서 기분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여러 가지 간식을 잔뜩 골라서 휴게실 창가, 야경이 별처럼 반짝이는 자리에 앉는데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미나 씨! 요새 진짜 얼굴 보기 힘들다! 잘 지냈어? " 그녀는 16920 상담소의 몇 안 되는 지구 출신 선한인 씨였다.
 
" 한인씨! 잘 지냈어요? 오랜만에 보니까 너무 반갑네요! 일은 좀 적응이 됐어요?"
 
한인은 원래 시미나와 같은 야간시간 근무자였다가 낮과 밤의 중간 지원팀으로 옮겨서 최근에는 얼굴 마주칠 일이 잘 없었는데, 입이 무겁고 합리적인 성격이라 시미나가 이 센터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또한,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시미나의, 동향 사람이라 굳이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시미나의 성이 '시'이고 이름이 미나 인 것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시미나는 그녀 자신의 이름조차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제대로 설명하기 싫어했다.
 
잠깐의 근황 이야기가 오가고 난 뒤 한인은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 미나 씨, 요새 야간시간 난리라며? “
 
” 네? 전 잘…. 무슨 일 있대요? “
” 미나 씨, 주변 사람들한테 관심 없는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런 관심이 쏠린 소문을 몰랐어? “
 
한인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 모런 씨랑, 미리드씨 사귄다는 이야기들 들었어? “
 
” 아…. 둘이 사귄대요? 뭐, 사귈 수도 있죠. “ 짐작하고 있던 시미나는 흥미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 둘이 센터 밖에서 손잡고 뽀뽀하고 난리였대, 며칠 전에 야간 팀, 중간팀 사람들한테 골고루 다 들키고, 어제는…, 그랬대. “ 자신에 대한 일도 관심이 없는 시미나가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것도 회사 내에서도 아니고 밖에서 연애가 좀 들키면 어때라고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면서 대충 맞장구를 치고 있는데,
 
” 미리드씨 그렇게 사내 연애는 별로라고 하더니, 도대체 둘이 왜 탕비실 근처 칸막이에서 뽀뽀하는 걸 걸려 가지고는, 사람들 다 처음에는 모런 씨만 확인되고 미리드씨는 뒷모습만 보여서 그 여자가 미나 씨다 아니다는 논란도 있었잖아, 둘이 잘 지내니까. “
 
” 아 네,라고, 관성적으로 고개를 끄떡이다가 시미나는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 네? 네 에에에 에???, 누구요? 저요? ”
 
“ 그래 미나 씨!! 몰랐나 보네? 자기 이야기도 나온 줄 몰라서 더 관심 없었구나? ”
 
“ 아니 이게 무슨….”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은 시미나를 앞에 두고 한인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나프니아 씨가 미나 씨 안 괴롭혔어? 대충 들어보니까 모런 씨가 양다리 비슷하게 시도하다가 미리드씨한테 넘어가서 엄청나게 열받았다고 하던데, 둘이 가만 안 둔다고 상대가 누구인지 찾고 있던데. 밖에서 걸리기 전까지 다들 상대가 미나 씨 아니냐고 수군댔거든. 난 사실 모런 씨가 미나 씨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미리드씨는 의외였어~.” 한인의 말이 길어질수록 시미나의 입은 점점 벌어졌으며 표정은 관리가 힘들어지려고 했다.
 
그제야 시미나는 나프니아의 행동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차인 여자가 된 나프니아가 돌아버린 것이었다. 안 그래도 성격 나쁜 그녀치고는 행동이 유한 편이네라고 욕 나오는 중에서도 시미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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