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에 경쾌함이 가득했다. 손에 쥔 구름 라테도 시미나의 기분처럼 몽실거렸으며, 햇빛 향이 가득한 얼굴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반짝거렸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녀의 기분을 알아채고 인사를 건넸다.
" 시미나 씨, 오늘 좋은 일 있나 보지, 얼굴 좋아 보인다!"라든가
" 오늘 뭐야? 데이트? 데이트? " 라든가,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모두 같았다.
정작 사람들의 호들갑과는 다르게 시미나에게 엄청나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분 좋은 휴일을 보내고 난 뒤, 일찍 일어나 햇빛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점심을 챙겨 먹었으며, 오랜만에 예쁜 옷을 꺼내 입고 자신을 치장한 다음, 여유로운 상태로 좋아하는 음료를 사 들고 산책하듯이 출근한 것뿐이었다.
그래, 그저 그것뿐이었다. 세상은 그 어떤 것도 바뀐 것이 없었고 단지 시미나의 일과가 바뀐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발걸음은 다른 날과는 매우 달랐다. 시미나도 모르는 그녀의 기분은 발끝부터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 데이트는 무슨 요, 그냥 낮에 일이 좀 있어서…."
'시간이 많이 남아서 기분 좋은 마음에 한 번 꾸며 봤는데 괜찮아요?'라며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시미나는 출근 전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멀쩡하게 입었다는 듯이 말끝을 얼버무리며 민망한 듯이 웃었다. 못 알아볼 뻔했다는 둥, 이렇게 예쁜데 평상시에 좀 꾸미고 다녀라는 등의 덕담인 듯 타박인 듯한 사람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거렸다. 오랜만에 자신감이 넘치던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것이라고는 그녀 자신의 작은 마음의 소리를 들어준 것뿐이었다. 입가를 간질이는 커피의 구름 거품이 진짜 구름처럼 포근거렸다.
시미나의 기분과는 다르게, 주말이라 상담소는 혼돈 그 자체였다. 주말 근무자들의 교체시간은 낮 근무자들과는 전혀 다르게 중구난방이라, 자리가 비워지기를 기다리는 야간 근무자들, 퇴근하는 주말 근무자들, 관리자들을 소리 높여 부르는 사람들,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퇴근할 근무자들을 재촉하는 막내 관리자들까지 출퇴근 시간 네 개 공간 환승역 정거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시미나의 기분을 망치지는 못했다.
관리자들의 " 빨리빨리, 지금 우리 대기인원 부족해요."라며 재촉하는 소리도 그저 지나가는 바람 소리처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 아이 씨 X, XXX XXXX." 평상시에도 그렇지만, 직장에서는 절대 듣고 싶지 않은 상소리라 화들짝 놀라서 옆을 둘러보니 주말팀 나프니아였다. 그녀는 사람들이 옆자리에 앉을 때마다 혼자서 중얼거리고 욕설하는 통에 여자들에게는 평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아니었다. 특별히 성별로 편을 나누거나 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시미나가 생각하기에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극명하게 나뉘는 이유는 나프니아가 예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자 직원들이 입 걸고 성격 더러운 나프니아를 감싸며,
“이상한 고객들한테만 그래요”라든가 “ 난 옆자리에 앉았을 때 잘 모르겠던데”라든가
하는 유의 헛소리를 시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뇌가 너무 청순하거나 귀가 잘 안 들리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나프니아의 성격은 그 정도로 명확했다. 그녀는 남녀를 가리거나 상하를 나누어서 자신을 보여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는 참 일관성 있는 성격이었다.
시미나는 상소리의 출처가 나프니아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또 시작이구나 하고 고개를 돌렸는데 옆에서 황망한 표정의 모런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 욕설의 원인은 너로구나 라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못 본 척 외면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시미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 오늘 나프니아씨 기분이 별로인 거 같네요.” 모런은 기다렸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저렇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전 그냥 다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한 거밖에는 없는데. 동료끼리 같이 영화 보러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모런은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제기랄! 잘못 걸렸네! 네가 문제야 네가. 동료끼리 당연히 영화 보러 갈 수 있지. 그런데 그게 나프니아잖아.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는 나프니아! 내가 저번에 나프니아 좀 이상한 거 같다고 했을 때 너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내가 토씨 하나도 안 빼고 읊어 줘?! - 모런은 나프니아 옆에 앉아 괴롭힘을 당한 후 정신이 혼미해진 시미나가 슬그머니 그녀에 대해 언급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감쌌었다 -라고 그녀의 마음이 소리쳤지만, 생각이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마음의 소리를 물리친 후 상냥함을 가장하고 이야기했다.
” 당연히 보러 갈 수 있죠,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닐까요? “ 모런은 시미나가 자기편을 들어준다고 생각했는지 적극적으로 하소연을 했다. 시미나는 업무 시작을 준비하느라 바쁜 척을 하며 나, 네 이야기에 관심 없다는 보디랭귀지를 모런이 이해하기를 희망했지만, 역시나 그는 섬세라고는 거리가 먼 종류의 인간이었다.
한참을 떠들어댄 이야기의 결론은 시미나의 머릿속에서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 나프니아가 좋아서라서가 아니라 여자친구가 만들고 싶었던 모런이 여러 사람을 모아 모임을 결성해서 영화를 보러 가려고 했으나 하필 시간이 되어 수락한 사람은 나프니아 혼자였고, 데이트 신청이라고 오해한 나프니아도 그냥 한번 만나볼까?라고 생각하고 수락했지만, 하필 미리드의 적극적인 공략으로 홀라당 넘어간 모런이, 미리드의 눈치가 보여 한 발을 빼려고 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나프니아가 열받은 것이었다.
물론 모런은 미리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 단락으로 정리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를 구구 절절하는 모런은, 핵심을 빼면 모르겠지라고 생각하는 멍청이였고, 눈치 빠른 시미나는 둘이 고깃집 이후에 썸 인지 연애인지의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다. 모런의 입장에서는 잘 될지, 잘 안될지 알 수 없는 여자보다는 자기 좋다고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여자가 좋았겠지만 말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외적인 부분은 나프니아가 훨씬 위였다. 어리고 늘씬하고 예쁘다고 말할 얼굴이었지만 치명적인 하자인 성격이 있기는 했다. 치명상은 피해 가는 것을 보면 그래도 완전 바보는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며 시미나는 모런의 평가를 약간 상향 조정했다. 별다른 것 없는 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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