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몰아치던 전화도 띄엄띄엄 그 수를 줄이고 밤이 점차 깊어져 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휴식 시간을 가지거나 퇴근하거나 최소한의 하급 관리자와 심야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만 남은, 그야말로 깊은 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반대편 구석 쪽에서 이 밤의 고요와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아 진짜, 그럼요~. 퇴근하고 한잔해야죠~. 호호호 호호, 한잔인데 당연히…. “ 하는 이 밤의 고요를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
”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진짜? 난 몰랐는데…. 맛집…. 진짜…. 호호호 호호“
뭘 그렇게 모르고 뭘 그렇게 진짜 진짜 궁금한 것이 많은지…. 멀리에서도 뜨문뜨문 들리는 소리에 ‘연애사는 집에 갈 때 너네끼리만 알면 안 되겠니? ‘라는 말이 육성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시미나의 주의력이 그쪽으로 향한 것을 눈치챈 안셀라네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인셀라네는 주변의 정보에 매우 관심이 많은 오지랖 넓은 수다쟁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상담소의 온갖 잡다한 정보를 한 손에 꿰고 있었다.
“ 미리드씨 최근에 남자친구랑 헤어졌대” 안셀라네가 눈가를 찡긋거리면 소곤거렸다.
“ 패써비씨 결혼하지 않았어? 구디씨가 자신도 아는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 아니 그쪽 말고 다른 쪽, 모런 씨. 미리드 씨가 작정한 거 같지 않아? 모런 씨랑 패써비씨 퇴근하려면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되는데. 홍홍홍홍홍…. “
” 어머 어머, 그런가 보다. 아니면 굳이 기다려서 술 마시러 가지 않지~. 미리드씨 평상시에는 칼같이 퇴근하잖아. 근데 요새 이 팀 저 팀 계속 술 약속 잡더라고…. “ 아줌마들은 소녀들처럼 킥킥대며 다른 사람들의 연애사에 지대한 관심을 표현하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 저번에 보니까 모런 씨, 주말팀 나프니 인가? 그 왜 키 크고 성격 있는, 입 더러운 …. 거기랑도 영화 약속 잡는 거 같던데 거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둘이 입사 동기라던데 “
” 어머 어머, 정말 궁금하다, 근데 모런 씨가 인기 있을 타입은 아니지 않아? “
” 아유~, 아직 젊잖아~~. “ 아줌마들의 수다는 안드로메다 대기권을 뚫을 기세로 계속되었다.
시미나는 인제 그만 산으로 가는 이 대화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하필 수다는 그녀의 자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상시에는 딴짓만 하려면 들어오는 전화조차도 조용했다. 하여간, 고객들은 도움이 되는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시미나는 남의 연애사 따위는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었지만, 적당히 맞장구를 쳐 가며 나 관심 없음을 온몸으로 시전 하며 듣는 척을 했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한 강인한 여성들은 이를 가뿐히 무시했다. 시미나는 적당히 기계적으로 호응하고 있었다, 안셀라네가 급발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퇴근하고 어디 좋은 데 가려나 보지? “ 안셀라네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높아지는 미리드의 웃음소리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들의 대화에 난입했다.
” 어디 좋은 데 가려고? 자기들만 좋은 데 가지 말고 다른 사람도 좀 데려가~. “ 안셀라네의 말에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간 후, 미리드의 떨떠름한 듯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 소화 안 된다고 밤에 야식 먹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요? 저희 고기 먹으면서 한잔할 텐데 괜찮을까요? “미리드가 소심한 방어를 시전 했지만, 안셀라네는 투사였다.
” 아니이~, 우리 말고. 시미나 씨도 배고프다고 했는데 퇴근 시간도 맞고 딱 맞네! 안셀라네는 옆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 때리고 있는 시미나를 언급했고, 그제야 이게 무슨 말인지 인식한 시미나의 뇌가 버벅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절대 이 연애 전쟁에 발 들이고 싶지 않았다.
“ 저, 저요? 아니 저는 조금 있다 쉬는 시간에 간식 먹을 건데요.” 그녀는 놀란 와중에도 거절을 이야기했다. 안셀라네도 안셀라네 였지만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구디도 이 대화에 웃으며 합류했다.
“ 그러지 말고 같이 가~. 젊은 사람들끼리 같이 어울리고 하면 좋지, 좀 전까지 배고프다고 뭐 먹을지 고민했잖아~” 구디까지 말을 보태자, 패써비와 모런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 사람, 많아지면 좋죠! 저번에 싫다고 거절하시더니. 오늘 딱 좋네요”
“ 근처 사람들끼리 딱 맞네”: 미리드는 한 시간도 넘는 거리에 살았다.
“ 뭐야, 나만 멀리서 사는데….” 미리드의 투정 같은 징징댐과 앙탈인지 모를 여러 대화가 좀 더 오가고 난 뒤에 시미나는 자신의 의견을 좀 더 단호히 이야기했다.
“ 전, 지금 다이어트 중이라, 죄송해요, 다음에 기회 될 때 꼭 한잔해요”라는 말을 끝으로 적절하게 들어온 전화로 인해, 뜬금없이 참여한 남의 전쟁은 끝이 났다. 멀쩡할 때도 하지 않던 다이어트는 우울증 걸린 무기력증 환자가 되었을 때 습관처럼 뱉어내는 무기가 되었고 매우 효과적이었다.
오늘은 더 이상 피곤한 일이 없기를 기도했지만, 역시나 세상은 시미나의 편이 아니었고 밤은 길었다.
“ 고객님, 행성 이동증명서 발급 여부는 본인인지 확인되어야 조회가 되는데 확인 도와드릴까요?”
“ 내 접속 번호 확인되고 사회보장번호도 입력했는데 무슨 확인?” 반말로 시작되는 대화를 보니 오늘은 긴 밤이 될듯했다.
“ 고객님이 입력한 정보는 상담의 원활을 위해 조회되는 정보이고 본인확인은 사회보장번호의 보안키를 입력해 주셔야 확인이 됩니다.”
“ 아니 내가 뭘 믿고 보안키를 입력해? 저번에는 그런 거 확인 안 하고 알려줬는데.”
“ 네? 보안키 없이는 저희도 정보조회가 되지 않습니다.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지만 이전에도 보안키로 인증하셨을 거예요.”
“ 보안키 입력 안 했다고! 거기 26920 상담소 맞아? 못 믿겠는데?”
“ 고객님은 경찰서 연결망 통해서 연결되었습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직접 연결 번호 입력 후….” 계속되는 실랑이에 관리자 경고가 들어왔다.
“뭐가 문제예요? 보안키 받으면 되잖아요?” 채팅으로 고객과 통화 중에 이 내용 설명을 할 수 없어서 잠시 답변에 지연이 발생한 순간 성격 급한 팀장의 짜증 섞인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시미나는 다 귀찮아진 상태라 팀장이 채팅으로 고객에게 안내하라는 그대로 다시 읊었다. 처음부터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다.
진 빠지는 대화가 끝난 후, 뭐가 문제였냐는 물음에, 보안키 입력이 싫다고 못 믿겠다고 해서요, 경찰청 연결망 통해 들어오셨는데라고, 간단히 정리해서 알려주자, 팀장은 잠시 침묵했다. 제가 앞 내용 청취를 못 해서 몰랐네요. 사과인지, 사실인지 모를 대화를 끝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피곤한 시간이 끝나고 휴식 시간이 시작되려는 시간에 퇴근하던 미리드는 뾰족한 눈으로 퇴근하면서 이야기했다.
“ 맘 바뀌면 합류하세요, 고기 맛있는데 가기로 했거든요”
시미나는 “ 네, 퇴근하세요”라는 말로 더 이상의 말을 차단했다. 표정과 말의 내용 차이가 너무 심했다. 시미나의 짜증도 싹트고 만물도 싹트는 봄은 아직 다 지나가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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