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것 때문인지 입에 맞는 음식이 반가워서인지 그녀들의 수다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 팀장님, 근데 시그마 에너지 이야기는 들었어요? 디놀드 사장 투자금 들고 날랐다는 이야기요! ” 몇 달 사이에 이전 직장동료 중 연락한 사람이라고는 엘리슨밖에 없었던 시미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투자금을 들고 날랐다고? ”
“ 네, 거기 직원들 월급도 다 떼먹고 프로젝트 여러 개 돌리면서 예산 돌려 막기 시전 하다가 이번에 새로운 프로젝트 3개인가 수주받고 그 계약금 들고 날랐대요. 얼마 전에 업계에 소문 다 나서 공장 막고 암튼 난리였다고 하더라고요. 팀장님 뒤통수치고 아이디어 훔쳐서 독립하더니 2년도 못 채우고 끝장났더라고요. 요새 사람이 너무 부족해서 발디한테 연락을…, 그럴 거면서….” 엘리슨의 계속되는 수다가 점점 흐릿해져 갔다. 그제야 얼마 전 뜬금없이 발디에게서 온 연락이 이해되었다.
“ 발디도 돈 못 받고 나왔대? 저번에 연락이 오기는 했는데 전화를 받지는 못했거든. ”
“ 어휴 말도 마세요. 발디는 돈 못 받은 것뿐만 아니라 디놀드 사장이 빚도 일부 떠넘기고 갔나 봐요. 요새 일손 너무 부족해서 연락해 봤더니 그 상태더라고요. 돈을 필요하지만 일은 못 하겠다고 하던데 거의 폐인 같더라고요. 팀장님 쉬고 있는 줄 알았으면 이번 프로젝트 같이하자고 연락할 걸 너무 아깝네요, 저 이번에 진짜 힘들었는데! ” 엘리슨의 수다는 계속되었고 시미나의 잡념도 깊어져 갔다.
디놀드도 발디도 한때는 시미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울고 웃고 했던 친구이자 동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배신은 시미나에게 큰 상처로 남았고 더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스스로 새장 속에 가두었다. 잘못은 배신당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배신한 자의 것이었는데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시미나는 그들의 몰락을 듣고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이제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긴 점심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를 만남을 아쉬워하며 돌아오는 길에 시미나는 계속 예전 생각이 났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과거의 슬픔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잊은 척 기억 한구석에 처박아 두고 묻어둔 상태였다. 깊디깊은 구덩이 속에 숨겨서 절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얕게 묻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그 형체를 짐작할 수 있도록….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자신의 괴로움을 이해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시미나는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슬픔도, 힘듦도, 지침도, 기쁨도, 모든 희로애락이 존재했던 시간이었지만 시미나의 열정과 꿈이 함께했었다. 그녀의 성취와 함께한 미련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미련에 빠져있던 과거의 자신을 떠나서 현재를 살 준비가….
시미나는 단 한순간도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늘 왜 이럴까 ‘라고 자책하던 그 모든 순간을 돌이켜보면 결국 자신의 욕망조차 외면하던 스스로가 있었다. 자기 마음의 소리조차 들어주지 않는데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을 리가….
이제 더는 존중과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는 자들을 위해 아까운 낭비를 할 필요가 없을 시간이었다. 세상 그 어떤 것 보다 가치 있는 나 자신을 위해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좀 더 나를 사랑해 줄걸.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시미나가 개선의 거리를 지나 평화의 광장을 지나갈 때쯤이었다. 울리는 전화에 마음이 수런거렸다.
“ 어 ”
“ 너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도대체 어디야? 이번에도 전화 안 받았으면....” 오랜만에 들리는 잔소리가 반가움에도 속이 울렁거렸다.
“ 나 배고파, 자기 집 근처에서 저번에 먹었던 '고요한 달이 오면' 먹고 싶어. ” 전화 반대편에서 긴 한숨이 들렸다.
“ 어딘데? 그 망할 다이어트는 이제 안 하려고? ” 비꼬는 듯 짜증 난 듯한 목소리에 갑자기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 여기 달 지구... 평화... ” 이야기를 하다말고 울먹거리며 대답을 하자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 평화의 광장이라고? 왜 울어? 진짜 우는 거야? 자기야 무슨 일 있어? 내가 금방 갈게 10분만 기다려 내가 잘못했어! ” 라고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사과하는 통에 눈물이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시미나는 그날 조프리가 광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고 평화의 광장 사연녀로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화재로 남았다. 물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자가출판 책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떠보니 다른 세상-1 (7) | 2024.10.17 |
---|---|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6 (2) | 2024.07.20 |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4 (2) | 2024.07.03 |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3 (2) | 2024.07.02 |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2 (2) | 202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