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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출판 책쓰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

 
프롤로그- 말 안 통하는 사람들을 위한 16920번째 우주 상담소
 
관리를 100년은 하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포니테일 남들 눈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직장인의 옷차림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릎 튀어나온 후줄근한 체육복 바지에, 편안이라 말하기 애매모호한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의 시미나는 오늘도 촘촘히 줄지어져 있는 칸막이들의 구석진 자리에 영혼 없이 앉아있었다.
평상시에도 딱히 일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은 도통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옆자리의 직원이 혼잣말하며 중얼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때마다 뮤트 버튼을 눌러가며 중간중간 욕을 하고 통화를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몸을 까딱일 때는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 때려치우겠다는 말을 지르고 싶었지만 몇 달 만에 집에서 나와,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다는 장점 하나만으로 선택한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다시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라 마음을 다잡고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시미나는 그녀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듯이 다시 밀어 넣고 음악 소리를 최대한 높이기 시작했다.
 
시미나가 사는 이 세상은 예전에는 지구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지금은 태양계에 속해있는 16920번째 번호의 행성이다. 지정된 번호를 포함하여 여전히 지구별이라 불리는 이 별은 우주개발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딱히 여러 종의 관심을 받지 않던 낙후된 행성이었으나 과학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인해 인간종들의 우주탐험이 시작되었고 이미 우주개발을 시작한 지 몇만 년은 앞서가던 다른 은하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인간들은 본인들이 최고의 지성체로 살던 행성에서의 먹이사슬의 최고 단계에 있다는 만용으로 인해 다른 종들과의 교류에 우위를 두고자 하였으며 이로 인해 발발하게 된 오랜 우주전쟁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퇴보를 겪었고,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과 도전으로 태양계가 속해있는 NGC 4161 은하단과 메시에 86 은하단과의 사이를 연결하는 행성 연결 허브로 발전해 왔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시미나는 다양한 우주종들이 거쳐 가는 이 행성에서 태어났으나 오랜 기간 외지에서 생활해 왔고 지금은 수많은 우주 종들이 몰려들고 거쳐 가허브 행성으로 변모한 이 행성에 적응하고자 하는 반쯤 현지인이었다. 다양한 행성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타지인들과 섞여 지내는 데 익숙한 시미나였으나 이렇게 정신이 나갈 것 같이 복잡해진 행성은 정말이지 적응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리고 시미나는 본인도 적응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 복잡한 행성의 원활한 적응 및 안내를 위한 상담소에 심야 시간에 근무하고 있는 전화 상담원이었다. 낮시간 과는 다르게 시미나는 밤에 근무하기 때문에 정해진 자리가 없었고 선착순으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는데, 하필 오늘은 그녀가 선호하던 문과 가까운 구석 자리는(칼퇴근이 매우 쉽고 관리자들의 눈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자리이다) 낮 상담원이 늦게 퇴근하느라 창문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는데 불운하게도 옆자리가 퇴사를 부르게 만드는 빌런이 앉게 된 것이었다. 밤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시미나는 뜨거운 커피를 홀짝이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했다. 다음 달 생활비를 생각하며, 도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에 대해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 ‘’ ‘을 백번쯤 내뱉고 나자, 정신을 나가게 하던 중얼거림도 잦아들며 주변공기가 차단되어 옆자리의 빌런과 나 사이에 공기로 된 벽이 생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커피에 추가금을 내고 인내심을 증진시키는 향을 넣어달라고 주문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오늘은 시작도 전에 험난한 하루가 될 조짐이 보였다. 평상시에는 전화가 들어올만 적당히 집중하며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는 등의 딴짓에 빠져있었지만, 오늘은 매뉴얼을 꺼내 다시 읽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왠지 뒷골이 싸했다. 시미나는 촉이 좋은 편이었.
 
“22관리자들이 소리 높여 시간을 외치고 콜대기를 하자마자 전화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지구별 16920 솔라 상담소 시미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아이씨 이 거지 같은 기계 어쩔 거야!!!” 전화를 받자마자 욕설과 함께 반말이 들려왔다. 시미나는 한숨을 참으며 차근히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일진이 나쁠 조짐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인공지능이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하고 행성 간 교류가 옆집 가듯이 편한 이 시기에도 전화상담실은 왜 Ai 센터가 아니라 지성체가 직접 답을 하는 이런 구시대적인 센터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일이 시미나의 생활비를 해결해 주기 때문에 상냥함을 쥐어짜 내 답을 했다. “고객님 욕설하시면 상담이 어렵습니다시미나는 매뉴얼 상에 있는 불량 고객 해당 사항을 읽으며 차분히 고객이 어떤 대응을 할지 기대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눈치 빠른 고객이었다. “ 씨발, 욕설한 없어, 화나서 혼잣말한 거야여전히 반말로 대답했지만, 불량 전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몰상식은 아니었다.
 
지성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판단한다. 그래서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면 그건 당연히 틀린 정보라고 생각하고 정보를 알려주는 상대방을 이해를 못 한다고 비난하거나 짜증을 내기 일쑤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는 자기 확신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틀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상대방이 틀렸고, 상대방이 여러 차례 설명해 주더라도 이해를 할 수 없으면 내가 모를 수는 없으니, 설명해 주는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여러 번 다시 자세하게는 의미가 없는 말이다. 나는 이미 듣지 않을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이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들을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어야 진행이 되는 것이라 생각보다 매우 일방적이다. 온갖 우주 종들거쳐 가는 이곳에서는 당연히 본인의 상식과 다른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알던 상식은 상식이 아닐 수 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들은 적응할 수 없다.
 
상식 없는 자들의 세상 속에서 시미나의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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