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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출판 책쓰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3

 
시미나가 심야시간대의 전화 상담사가 된 것은 전혀 특별할 일이 없는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하던 일에 진절머리가 난 시미나는 일을 그만두고 3달 가까이 밥 먹는 것 책 보는 것, 영화 보는 것 등의 모든 일을 침대 위에서 해결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미나는 우울증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상실은 그게 어떤 종류이든지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녀가 어떤 종류의 사람 인가와는 상관없이 병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게 마음의 병이든 육체의 병이든.
번 아웃이 왔다면 이해가 가지만 시미나가 우울증이라니, 그녀의 옛 동료들이 알면 어처구니없어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이해와는 무관하게 그녀는 집안도 아닌, 침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고, 몇 년간 제대로 못 잔 잠을 한꺼번에 보충하듯이 거의 기절 상태였었다.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것이 죄는 아닐 텐데 시미나는 햇빛을 받으면 타 죽는 뱀파이어처럼 밤에만 깨어있고 활동할 때도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낮의 밝음은 시미나 에게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밤의 그림자에 숨어서 죄지은 사람처럼 생활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전혀 이런 상태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상태를 알지 못했다. 물론, 인간관계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약속만 잡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시미나는 일중독이고 돈을 너무 사랑하는지라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때도 구직사이트를 찾는 인간이었다. 그녀의 일탈이자 휴식은 3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구직사이트 갱신 목록 최상단, 집 근처에서 제일 빠르게 구할 수 있는 밤에 할 수 있는 심야 시간 전화 상담사가 된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 일에 딱 맞는 대충대충이었다.
 
본능에만 의존해서 아무 생각 없이 구한 일치고는 일은 생각보다 시미나의 적성에 맞는 편이었다. 그녀는 출근할 때 옷차림을 신경 쓰는 것을 정말 귀찮아하는 성격이었을 뿐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친분 유지를 위한 관심과 좋은 사람인 척에 질려버렸다. 어차피 부질없는 일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뭐,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 완벽한 생각이었다.
 
밤에 출근하니 출퇴근 시간에 누구인가를 마주칠 일도 거의 없고, 비대면으로 대화하는 직업이라 당연히 사람을 만날 일도 없었으며 그나마 마주치는 직장동료들도 거의 얼굴만 마주치고 한 평조차도 되지 않는 칸막이 쳐진 각자의 책상에 늘 새로이 들어오는 얼굴도 모르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자면 그냥 이렇게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점차 치유되는 마음 상태와는 다르게 시미나의 외형은 집에 처박혀서 세상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은둔형 외톨이에 가깝게 변모 중이었지만 말이다. 시미나는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찾았다. 좋은 방향은 아닌듯했지만 말이다.
 
우물 속에 있으면 우물 밖의 세상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시미나는 이전 일을 그만두기 전에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고 알 수 없었던 다른 시선으로 과거를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는 24시간 대기상태로 근무할 필요가 없었으며, 칼퇴근은 이야기책 속에서만 나오는 단어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고, 퇴직금이 있었으며, 갑자기 어떤 일이 터지는 것에 대해 더는 걱정하지 않게 되었다. 퇴근 후 연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벼락을 맞는 것처럼 소름 끼치게 좋은 일이었다. 매번 가족들과의 약속이 뒷전으로 밀려 비난받을 일 도 없었고 취미를 가질 수도 있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월급을 제하고는 나빠진 것이 하나도 없어 보였지만 시미나는 여전히 가슴에 바람구멍이 난 것처럼 시렸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전 직업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는 것일 뿐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면 이 일도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우주 상담소는 기본적으로 다른 행성 출신들의 원활한 지구 생활 적응과 여행 등을 돕는 센터인데, 쉽게 말해서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어떤 행성은 치료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어떤 행성은 신관에게 가며, 어떤 행성은 무당에게 가는데 지구에서는 병원에 가야 한다는 정보 등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특히 심야의 상담소는 정보 안내 및 해킹 범죄 등을 당했을 때 돈이 출금되지 않도록 계좌를 긴급하게 막아주거나, 급박한 이민국 관련 처리를 도와주거나 하는 등의 사고 신고만 가능했다. 남들 다 잘 때 일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건강에는 좋지 않음이 명확하고, 심야에는 긴급한 사고 신고만 가능하다고 안내 멘트가 뜸에도 불구하고 굳이 굳이 새벽 시간에 전화해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들어달라고 우기는 것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제정신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보통은 이런 식이었다.
 
“나 지금 한강공원에 왔다가 길을 잃었거든, 택시를 타고 와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현금이랑 카드랑 다 잃어버려서 찾고 있는데 편의점에 와서….”
 
“고객님, 길 안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신가요? 아니면 분실물 신고를 위해 경찰서 안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아닌 내가 안드로메다에서 b11 우주선을 몰고 있는데 내가 우스워? 빨리하라고,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진짜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의 어이없음이다. 보통 저런 술에 취한 작자들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여러 차례 물어보면 화를 낸다. 뭘 빨리하라는지, 제발 좀 알려주고 다그치면 좋겠다. 그 와중의 제 잘난 척과 여러 종류의 딴소리는 기본이다. 인신공격형도 있다.
 
“고객님, 지금 말씀해 주신 내용으로는 신고를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평일 업무시간에 다시 문의 부탁드리겠습니다.”
“야, 너 어디 출신이야? 너 지구 출신 아니지? 말투가 명왕성 탄광 지구 억양이야 거기 16920 상담소 아니지? 너희 팀장 바꿔, 팀장 바꾸라고!”
 
내가 가족인데도 있다.
 
“아니 우리 아들이 지금 수성에 가 있어서 이민국에 급히 제출할 재정 관련 서류발급이 필요한데 발급이 안 된다고 하는데, 내가 사회보장 번호도 다 알고......”
“본인이 아니면 발급할 수 없으세요. 혹시 아드님이 미성년자인가요?"
"아니 우리 아들은 26세인데 아무것도 몰라서 내가 다 해줘야 해.”
 
’아니 어머니, 아들이 26살이나 먹었는데 서류발급을 왜 어머니가 전화하시나요? 본인이 직접 전자 상으로 발급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키우면 사회생활이 되겠어요? 아들이 마마보이라 아무것도 못 하며, 계속 마마보이로 살게 할 거라는 인증을 이 새벽 시간에 할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마음속으로 매우 강렬하게 생각했지만 죄송하지만, 본인이 연락 주세야 돼요.라는 말을 도돌이표로 포기할 때까지 계속해야만 했다. 알아듣는 사람은 바로 수긍하고 간다. 똑같은 안내를 대상만 다르게 했는데 왜 누구는 이해하고 누구는 안 되는지 정말 알 수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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