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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다른세상 -7

이세계에 와서도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직장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고 최대한 대충 살았을 텐데……. 삶이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개 속에 있는 줄 미리 알았다면 소중한 사람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 같다.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더니, 먹고사는 문제는 어디에서나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인간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것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정도이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도 엉뚱한 세상에 강제로 떨어져서 슬퍼하는 것도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는 한낱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출근하기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되고 일에 조금 익숙해졌나 싶었을 때 한동안 자리를 비운 천사장이 돌아왔다. 여행사로의 출근은 나를 이곳에 잡아두기 위한 핑계쯤으로 반쯤 짐작하고 있던 나는 집에 돌아가는 방법에 대해 닦달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제가 1년 이내에는 무조건 돌아가야 하는데 언제쯤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 여행사 출근하지 않으면 문적님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오고는 있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제가 빨리 돌아가는 것이 사장님에게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미운 다섯 살 조카처럼 나는 천사장을 따라다니면서 집으로 가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계속 질문을 퍼부어 댔다. 그러다 보니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어린애들이 한 명을 표적 삼아 왜요 병에 걸리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 애들처럼 나도 천사장이 무섭지 않았고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답이라도 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신이라는 존재에 막역히 가졌던 두려움은 내가 그의 세상에 속하지 않아 아무런 영향을 받을수 없다는 것을 느끼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네가 떠나온 시간선을 찾으면 여기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내든 상관없이 떠나온 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또한, 넌 이곳 사람이 아니라서 현지인들과 자주 만나서 접촉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의 존재감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이세계가 너를 거부하지 않게 달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곳에 적을 두고 있는 생명체들과 계속 접하고 그들 속에 섞여 있어야 해. 그리고 니가 떠나온 차원을 찾는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상대할 수 있는 직원들 포함해서 엄청난 힘을 쏟아붓고 있는데 너도 당연히 여행사를 위해 영기 수집을 위해 상품을 팔아야지. 너 때직원들이 돌아오고 있지를 못하니 당연히 그들을 대신해서 일을 해서 갚아야지. 세상의 규칙은 오고 가야 하는 법.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는 없어.”
 
“그래도 저도 뭔가 시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다리다가 정말로 길을 잃어버리면요?”
 
“육체의 그릇이 만들어져야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접촉할 방법이 생길 것이라고도 설명했는데 도대체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을 묻는 거야!”
 
천사장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집요한 의지를 몇 번 보여준 뒤, 첫 만남에서 보여줬던 예의는 치워버렸다.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여러 번의 거절이 오간 뒤 더 이상의 포기한 천사장이 나를 버린 곳은 설악산이었다.
 
물밑에서 나를 돌려보내기 위한 어떤 일이 일어나고는 있는 것 같은데 알려줘도 이해를 못 하고 질문만 많은 나를 떠맡은 것은 말단이라 비슷하게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초금대 주임이었다.
 
“아니 도대체 여기를 왜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 겁니까? 공간이동 그런 것 없어요? 문만 열고 나가면 정상과 연결되는 술법 있잖아요?”
 
“공간연결이나 축지법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줄 알아요?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전부 다 천인이 됐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초주임은 아무것도 몰라서 헛소리하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 보며 대꾸했다.
 
첫 출근 때 뇌물로 가져다준 맥주와 과자들이 마음에 든 이후로 우리의 관계는 좋은 쪽으로 미세한 진전이 있었다.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호의적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좀 애매했지만 적어도 나쁜 관계는 아닌 상태였다. 자주 맥주와 과자들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비닐봉지는 일종의 아이템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초주임은 그것을 ‘도깨비 주머니’라고 불렀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작명이었지만 봉지가 비슷한 효과를 가지긴 했다.
 
원래 비닐봉지에 들어있어 나와 함께 이곳으로 넘어온 물품들은 그것을 다 사용하고 나서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겨났다. 보통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 있었는데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본 결과, 자정을 기점으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벌크 맥주 중 먹다 남은 맥주캔들과 누나의 심부름으로 산 하이볼 몇 캔, 안주로 부숴 먹다 남은 신라면 조각들과 과자 등이 영구적으로 남았다.
 
이곳으로 넘어올 때 가지고 온 것에는 내 개인 가방도 있었는데 노트북, 아이패드, 휴대전화, 갤럭시 워치를 포함하여 온갖 잡다한 용품이었다. 아침에 독서실을 정리하고 챙겨나온 것들이라 평소보다 짐이 많은 편이었는데 애지중지하며 사용하던 전자제품들을 볼 때면 속이 쓰렸다. 이곳에서는 비싼 쓰레기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고 하루가 지나면 가방이 도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들고 다닐 수도 없었다. 계속 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가방과 전자기기들은 집에 고이 모셔져 있었고 아이패드는 예루리의 스케치북으로 바뀌었다.
 
반면에 편의점 봉지는 매우 유용함을 자랑했는데, 속의 내용물을 전부 소진하고 난 뒤 잘 접어서 넣어두면 시간이 지나도 봉지가 채워지지 않았고, 펴서 두면 또 내용물이 채워졌다. 편의점 비닐봉지가 가장 소중한 아이템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나는 등산도 너무나 힘들고, 비싼 쓰레기가 된 최신형 전자제품을 생각하며 짜증이 나 있던 상태라 뇌의 필터가 작동하지 않아 생각한 그대로 말로 출력이 되었다.
 
“결국 천주임님은 이동 관련 술법은 사용 못 한다는 거네요.”
 
“……. 술법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설악산 산신님의 영역에서 초대도 받지 않은 주제에 함부로 휘젓고 다니면 큰일이 날 겁니다.”
 
“먼저 가서 허락받고 오시면 되지 않나요?”
 
“…… 구미호는 애초에 둔갑술 전문이라고…. 그리고 내가 이동술법을 사용할 수 있었어도 이서우 씨는 체력단련을 위해 걸어가야 합니다.”
 
초주임은 죽기 일보 직전으로 힘들어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삐딱하게 깐죽대는 나 때문에 거의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설악산은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는 산답게 험하기가 이를 데가 없었는데, 아름답기도 하지만 등산이 힘들기로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명산을 우리는 거의 맨몸으로 산 아래 입구부터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너무 힘들다 보니 말이 당연히 곱게 나오지 않았고, 산신을 만나러 가는 길인 만큼 일반 도로보다 몇 배는 험하고 위험했다. 우리는 이곳을 벌써 3일째 헤매는 중이었다.
 
초주임도 예민함이 나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차로 중간까지 이동한 뒤에 등산을 시작하면 안 되나요?”
 
“산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게 보호되고 있어서 설악산 입구에서부터 그 결계를 밟는 것이 진법의 시작인데 인간이 이용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겠어요? 생각이라는 게 없나. 아무나 접근할 수 있으면 아무나 산신을 만나지…….”
 
“………….”
 
그렇게 어설프게 화해한 것 같던 초주임과 나의 관계는 설악산 방문을 기점으로 매우 나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초주임님은 요괴 혼혈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체력이 안 좋은 게 맞아요? 어떻게 인간인 나보다 더 별로인 거 같지?”
 
초주임이 설악산 하나 제대로 오르지 못하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요괴에 대한 내 안의 평가가 점점 더 하찮은 쪽으로 정의되고 있었다. 저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어하고 결계를 우회해서 넘어가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초주임도 제대로 된 길과 방문 방법을 모르는 것이 거의 틀림이 없었다.
 
내가 이상함을 감지한 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초주임의 말에 결계 문을 찾기 위해 용아장성 바위 능선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정식 문으로 들어갈 수 없으므로 개구멍 바위 근처의 개구멍 결계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져서 발을 딛기도 쉽지 않은 좁은 바위틈에 서서 초주임을 한 대 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용아장성은 인간들에게는 죽음의 구간으로 알려져 등반이 금지된 곳이었는데 용의 이빨처럼 날카로운 암석 봉우리들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이름이 붙은 곳이었다.
 
물론 금지라고 해도 절대 말을 들어 먹지 않는 몇몇 인간들로 인해 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밤에는 원귀의 기운이 강해져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우리는 전날 인간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허가된 길 근처에서 노숙하고 아침 일찍 용아장성에 발을 디뎠다.
 
이상한 것은 나는 산의 정상으로 갈수록 힘든 것이 줄어들고 쌩쌩해졌고, 초주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완전군장으로 40킬로를 완주한 극한 훈련을 마친 군인 같은 상태로 바뀌고 있었다.
 
능선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극도의 체력 고갈로 산소가 모자라 정신을 놓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보기에는 아무리 봐도 길이 아닌 곳으로 가려고 해서 여러 번 목덜미를 잡아서 멈춰 서게 만들어야 했다.
 
정오에 접어들었었을 때쯤 우리는 겨우 결계석 흔적을 발견하고 산신의 영역에 진입을 시도했다. 입구를 여는 방법은 방문자를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처럼 엄청나게 복잡했는데, 절벽 틈새로 자란 금강송들 사이에서 가지가 반대쪽 절벽 쪽으로 구부러져 자란 금강송과 용의 어금니처럼 솟아오른 암벽 사이에 천사장이 건네준 금색 글씨가 새겨진 납작한 검정 판을 허공에 던진 다음에 그 판이 떨어지기 전에 판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3번 빠르게 돌면 결계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곳에 도착해서 보니 이 미션이 얼마나 어이가 없는 것인지 실감이 났다.
 
용아장성 능선은 성인 남자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정도의 좁은 암석 능선이 굽이굽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허공에 던져진 판을 중심으로 3번 돌라니 말만 들어도 아연할 정도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원래의 계획은 초주임이 결계를 여는 방법을 시도하는 것이었는데 쌩쌩해진 나와는 다르게 그는 갈수록 초주검이 되어 이제는 대화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나보다 덩치가 작긴 했지만, 정신을 놓아가는 성인 반요를 끌고 어떻게 마지막 관문 잎에는 도착했지만, 나는 저 미친 짓을 할 자신이 없었다.
 
"초주임님, 정신 차려요!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시면 어떡해요!"
 
초주임을 버리고 돌아갈 수도 없던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깨웠지만 이미 정신을 놓은 반요는 대답이 없었다.
 
"주임님, 주임님! 야 아아! 너 지금, 이 절벽 상태 확인하고 기절한 척하는 거지? 야! 초금대! 너 지금 안 깨면 너 진짜 내 손에 초주검 되는 거야! 야! 얼른 일어나! 야~~~."
 
나의 애절한 절망 어린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동도 없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산의 밤은 빨리 다가왔다. 저 멀리 보이는 산 그늘이 짙어지기 시작하고 밤이 다가올 조짐이 보였을 때 나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금대를 버리고 갈 용기도 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닐 자신도 없었지만, 이상한 생각이 솟아났다.
 
결계문으로 보이는 곳을 미동도 없이 앉아서 쳐다보고 있자니 나무와 암석 사이로 실금 같은 것이 보이는 듯했고, 그 너머가 언뜻언뜻 절벽이 아니라 평지처럼 보였다. 또한 정상으로 올수록 가벼워지는 몸 상태가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초금대를 깨우려고 시도 했지만 역시나 그는 깨어나지 않아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결국 초금대를 등에 업고 허공으로 검은 판을 날렸다.
 
"씨X! 초금대 이 X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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