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법
술법은 우주 만물과 영적인 세계의 원리를 발견하고 세우는 것이고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신선이나 신령이 부리는 신비한 힘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신선이 되는 수련 방법이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인간들이 생각하는 도술보다 술법은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술법은 육체와 정신의 수련 모두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신이라고 알려진 천인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심신 모두 수련이 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었다.
마법이 세상의 법칙을 비틀어서 원하는 결과를 끌어내는 방법이라고 하면 술법은 세상의 법칙을 어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수만 가지의 법칙 중 하나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를 실제로 볼 수 있게 하는 힘, 그래서 인간들의 짧은 인생으로는 시도조차 해볼 수 없고 겨우 그 끝자락에 있는 영력이나 도술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수미산 여행사의 천사장이자 사방신의 하나인 다문천왕은 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식한 이후로 한 번도 인간에게 술법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인간은 술법을 수련하기 위해 준비 과정에 들이는 시간도 문제지만 술법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내공 외공 모두의 단련이 필요하며 수련하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지 술력을 깨우치기 위한 목적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련하는 시간이 오래 지나 정기신(몸과 마음 기운)이 조화에 들면 비로소 술법을 익히기 위한 기본 바탕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별 잡생각 없이 수련하다 보면 된다는 소리다.
육체조차 제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자들이 인간인데, 술자의 의지대로 세상의 법칙을 움직이게 뽑아내는 것은 당연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천사장은 한밤중에 다시 여행사로 들이닥친 불청객 때문에, 자신의 이런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밤에 수미산 여행사를 방문할 수 없다는 법칙을 두 번이나 거스른 타 차원 출신의 인간 때문이었다.
이서우는 도대체 어떻게 결계를 넘어서 들어왔는지 도무지 짐작도 되지 않았고, 집요한 의지가 북방신 조차도 골치 아프게 만들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돌려보내 줄 수 있는 것이었으면 이미 손을 썼다고 몇 번을 말해!”
“제발 방법을 말해주세요. 이곳으로 왔으면 되돌아갈 방법도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라도 할 테니 제발 방법을 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타협의 시간에 들어섰고 이곳에 있는 동안은 잘 적응해 보겠다는 결심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복권의 결과를 보고 나는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쉽게 내 결심을 뒤집었다.
내가 산 복권은 2개가 한 세트라 보통 1개가 당첨되면 나머지도 같이 당첨되는 스피또 2000 복권이었다. 평소에는 스피또 1000을 구매했지만, 그날의 나는 합격이라는 뽕에 취해 복권 당첨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행운의 상징으로 기념 삼아 보관 해두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커서 천원 더 비싼 즉석 복권 2장과 로또 한 세트를 샀다. 행운의 날을 기억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었으면 나도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아마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루리가 긁은 복권은 그림 두 개가 모두 일치했다.
나는 즉석 복권 1등에 당첨되었고 세트 구매였기 때문에, 1등이 2세트가 당첨되었다. 무려 20억이었다. 이쯤 되니 이제는 즉석 복권뿐만 아니라 로또의 결과도 궁금해지는 상태였다. 천사장이 옳았다. 나는 그날 운이 좋았고 죽지 않고 이곳으로 잘 이동했으며 눈으로 확인한 행운을 핑계 삼아서라도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의 가장 평범한 사람을 순서대로 꼽자면 나는 정확히 절반에 해당하는 50퍼센트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처음에 이세계로 떨어졌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길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를 생각했다. 결국 포기를 입에 담은 것은 나의 의지였다. 내 행운을 직접 눈으로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가장 평균의 인간이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도록 현실화하여 내 눈앞에 나타난 행운을 기회 삼아 무조건 돌아갈 것이다. 내가 인간으로서 가진 가능성이 크게 눈뜬 순간이었다.
***
대학을 입학한 이래로 모든 대학생이 꿈꾸는 정규직 직장인 1 일차가 되었다.
사장은 북방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 신이다. 외국계 기업 중에서도 탑티어임이 맞는 듯하지만, 회사는 외국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세계에 있고 집에는 갈 수가 없는 단점이 있다. 정식으로 가지게 된 첫 직장이 하필 이세계 여행사인지……. 왜 이렇게 기분이 우울한지 알면서도 또다시 씁쓸했다.
오늘부터 예문적과 함께 여행사로 출근하기로 했다. 나는 이곳의 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주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천사장이 지정한 곳에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집도 돈도 없어서 나가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의 집에서 살 수 있도록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세상의 허가가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몰라도 이세계 집을 구하는 것만큼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기는 바람이다.
예문적의 집은 마당이 있고 독채가 있는 단독으로 된 2층짜리 아담한 주택이었는데 방 하나가 사랑채처럼 단독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 방은 원래 창고로 쓰면서 장류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던 곳이었다고 하는 데 정식으로 그의 집에 살게 된 이후에 나는 이제 사랑채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방에는 위장술, 환술, 결계술, 부적술 등이 펼쳐져 있어서 내가 이 세계의 무단 방문자임을 알 수 없고 보호할 수 있는 술법과 진들이 펼쳐져 있다는데, 내 눈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예루리의 몸에서 보이던 이상한 빛들과 알록달록한 그림자도 첫날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 파편인가가 영향을 끼친 것 같기는 했지만, 내가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캐묻자 다른 질문들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던 예문적이 불편해했다. 천사장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파편에 알리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예문적의 집도 이상한 점이 많긴 했다. 골몰길을 꼬불꼬불하게 따라 한참을 들어오면 도로 끝에 있는 집이었는데, 골목은 집들이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길이었다.
정작 예문적의 집은 대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 뒤편으로 넓은 마당이 있었고 아담해 보이는 외부와는 다르게 내부가 매우 넓었다. 제일 이상한 것은 테라스로 한강이 펼쳐져 있었다. 건물 외부에서는 평범하게 담장으로 가려진 잔디 정원이었다.
그의 집 내부에서는 대학 때 얼떨결에 휩쓸려서 놀러 간 동기의 집에 갔던 때 느꼈던 부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집 전체에도 뭔가 마법을 부려둔 것 같지만 과학기술만 존재하던 세상에 살다 온 나에게는 술법이 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왕좌의 게임’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내 취향은 게임 빙의물이나 헌터물이었다.
여행사로 출근이 확정되고 난 뒤 월세 등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이미 천사장에게 받았다고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오히려 덕분에 받은 것이 많다고 고마워했다.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집으로 돌아왔더니 두 배는 넓어진 듯한 마당과 묘하게 깨끗해지고 빛이 나는듯한 건물들 내가 사용하는 방 바로 옆에 갑자기 생긴 욕실 등 집이 전체적으로 커지고 깨끗해진 모습이었다.
또한 갑자기 뒷문이 생겼는데 그곳을 통해 나오면 [수미산여행사]가 있는 번화가 근처로 바로 연결이 되었다.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신들의 사정이니 알고도 모르고 싶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예문적이 이제부터는 나도 이런 이적을 행하는 술법을 배워야 할 것이라는 말에 다시 절망했지만……. 그래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초금대가 [수미산 여행사]에 근무한 지도 벌써 백 년이 넘었다. 그는 원래 반인반요로 어머니가 구미호였고 아버지는 인간이었다. 처음에 여행사에서 근무할 때는 술력을 쌓아서 요괴가 되고 싶었지만 다양한 인간 손님들과 특별한 손님들을 백년 넘게 겪고 난 뒤에 결국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무래 생각해도 신들의 삶은 제약이 많고 재미가 없어 보였다.
[수미산 여행사]에서 일반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어야 했는데 적어도 백 년은 수련해야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초금대가 인간 손님을 상대하게 된 지는 채 20년도 되지 않았다. 그는 요괴 중에서는 어린 축에 속하는 132살 이었다.
여행사에서 인간 손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매우 치열했는데 그 자리는 거의 도깨비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다. 도깨비들은 오래된 물건이 그 본체라 직접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술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없는 낮에 인간 손님을 상대하게 하는 것은 인간에게 안전했다.
하지만 20년 정도 전에 도깨비들의 단합으로 인간을 속여넘겨 결국 여행사를 벗어났고 바깥세상에 나가서 영기를 몰래 빼돌린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에 극히 분노한 천사장이 인간을 상대할 수 있는 직원 선택에 다양한 요괴들로 채워 넣었고 시기를 잘 타고 둔갑에 성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금대도 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초금대는 반인반요라 귀와 꼬리만 감추면 되는 상태여서 그것도 둔갑이라고 쳐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반요 중에서도 인간의 피가 강하면 겉모습이 인간이라 인간 세상에서 어울려 살았는데, 초금대는 요괴의 힘이 훨씬 강한 편이라 둔갑에 성공한 뒤에 겨우 인간 세상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세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가 나름 치열하게 쟁취한 이 자리에 뜬금없이 이세계 출신 인간 직원이 추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화가 났다. 한정된 시간 여행 기회가 줄어들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금대는 새로운 직원에게 텃세를 부리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번에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했습니다. 이서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구경이니 하면서 못 알아보는 척하더니 영안이 뜨여있는 거 봐서는 혼혈 맞죠? 그러게, 왜 아닌척하면서 시험이나 하고는…….”
눈앞의 직장 선배는 저번 일이 매우 기분이 나빴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면서 삐딱하게 굴었다.
“저번에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거 같아서 별거 아니지만 선물을 좀 가져와 봤습니다. 이거 맥주인데 드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선물은 됐어요. 뭐 얼마나 …….”
초금대가 거절을 입에 담으려 하자 예문적이 잽싸게 알려주었다.
“그거 이세계에서 건너온 술이야. 맛이 끝내주더라. 필요 없으면 내가 가져도 돼?”
“………….”
초금대는 누가 술을 빼앗아 가기라도 할 듯 낚아채서 사라졌다.
내가 편의점에서 봉투에 담아서 가져온 맥주는 예문적과 둘이 다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멀쩡히 봉지에서 처음처럼 발견했다.
예문적의 짐작으로는 이 세계에서 허가받지 않은 내가 가지고 온 물건이라 이곳에 속해있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확인을 위해서 천사장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가지고 왔지만, 이세계 물건은 구하기가 어렵고 인기가 많다고 해서 선물로도 가지고 왔다.
역시 예문적의 조언을 듣기를 잘한 것 같다. 첫 직장으로의 출근은 다행히 무사히 이루어졌다.
'자가출판 책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떠보니 다른세상-8 (1) | 2024.10.28 |
---|---|
눈떠보니 다른세상 -7 (2) | 2024.10.27 |
눈떠보니 다른세상-5 (2) | 2024.10.24 |
눈떠보니 다른세상-4 (2) | 2024.10.23 |
눈떠보니 다른세상-3 (5) | 2024.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