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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출판 책쓰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2


[정(精) 또는 정괴(精怪) : 정령이라고 알려져 있음.]

요즘은 매일 매일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것 같다.

자격증 시험을 공부할때만 하더라도 일상이 너무 규칙적이고 변화가 없어서 사는게 재미가 없다고 생각 했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되는 매일을 살다보니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역시 사람은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곤했다.

사실 최근에는 잠을 거의 못잤다.

눈을 뜨면 빛무리가 날아다니고, 눈을 감으면 웃음소리가 노래소리처럼 계속 들려왔다.  

이것들을 처음 봤을때 범상강과 초금대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미쳐가고 있거나 악령같은 것이 씌인것이 아닌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산신의 영역에 잡귀가 들어올 수 있을리가 없고,  내가 이 세상에서 병에 걸릴수도 없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제정신을 차렸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고민을 하고 주변에 알아 본 결과로, 나에게만 보이는 저 이상한 빛무리는 일단 해로운 것은 아닌듯 했다.

멀리서 부터 우다다다하면서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가까워 지는 것을 보니 범상강이 아침부터 뭔가를 또 하나보다. 그 뒤에 발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이 함께 들리는 걸로 봐서는 초금대도 같이 있는것 같았다. 노래 소리가 들리면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는게 정상인데, 이놈의 세상은 정상적인게 하나도 없는지 예전보다 기감이 더 예민해졌다.

햋빛을 듬뿍받고 처음보다 더 예쁘게 반짝이는 펄 가루를 멍하니 보고 있자니 범상강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서우! 이거 봐봐! 초금대가 서고에서 찾았는데 니가 보고 있는게 정괴 같다!"

"정괴?"

그것참 괴물같은 이름이네.

지금 내앞에서 웃고있는 빛가루가 말을 알아듣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정황이 많았기 때문에 입밖으로 생각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건 뭔데?"

초금대는 내가 그를 만난 이래 거의 처음으로 활짝웃으며 대답했다.

"산천 초목이나 무생물 같이 여러가지 사물에 깃들었다는 영혼을 말하는 건데, 신령스러운 기운이 모인곳에서 예전에는 한번씩 보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 목겪된 적은 거의 없어서 상상도 못했는데...."

"정괴 맞는거 같다! 그게 아니면 여기서 보일수가 없지! 아직도 옆에 있지?"

범상강이 떠드는 소리가 씨끄러운지 반짝이는 빛무리는 그의 귀와 입주변을 막을듯이 휘돌아서 움직이고 있어서 얼굴이 반짝반짝 했다.

"어, 니 얼굴 옆에 있어."

"진짜? 나를 좋아하는건가? 나도 어릴 때 정괴 가지고 싶었는데!"

그건 아닌거 같다. 니가 말할때마다 시끄러운지 멀어지고 있어. 물론 사실을 알려줘봤자 좋을건 없으니까, 나는 현명하게 입을 다물었다.

범상강이 어릴때는 도대체 언제를 말하는건지 궁금함이 생겼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말을 돌렸다.

"살아있는거야? 대화는 가능해? 말을 알아 듣는것 같은데?"

"여기 보면 '소통이 가능하고 삶에 영향을 미칠 수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어떤 능력이 있는 정괴인지는 확인 안되나? 정괴마다 성격이 제각각 이라고 하던데 부정적인 타입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웃음 소리가 들리고 많이 반짝인다는 거 보니까 긍정적인 타입 아닐까요? 반짝임은 치유나 예언력이 있는 정괴에서 대부분 나타난다고 써있는데 어떻게 생각 하세요?"

신나서 떠들어 대는 둘의 대화가 즐거운듯 주변을 물결치듯이 떠다니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호기심과 기쁨을 표현하는 것을 보니, 정괴라는 것이 맞는것 같았다.

흠......

"그 책을 내가 한번 읽어 볼 수 있을까?"

둘의 정신없는 대화에 머리가 아파 온 나는 책을 받아 들고 직접 정괴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읽었다.

정확히는 눈으로 보기만 했다.

젠장할!

이놈의 세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하나의 작은 바위를 넘었다 싶으면 그것보다 더 큰 산이 나타나는 식이었다.

"저번 책은 분명히 한글이었는데 이번건......"

"아, 이 책은 산신님 서재에서 빌려왔습니다. 오소리 어르신이 특별히 상강님이 읽을 수 있는 구역까지는 우리도 이용 가능하도록 허가를 해 주셨습니다. "

"할아버지 서재는 옛날 책 밖에 없어. 거의다 고어로만 기록되어 있어서 읽으려면 머리아파. 그런데 초금대 너 진짜 대단하다. 나도 잘 모르는 고어를 편하게 잘 읽는거 보면!"

이 상황에서 칭찬같은 훈훈한 분위기는 제발 둘이서만 해주면 좋겠는데.

결국 나는 초금대의 도움을 받아서 정괴에 대해 파악해야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정괴라고 불리는 이 특별한 현상은 물질적인 형상이 없는 비물질적인 초자연 존재로, 영적형태로 존재했다.

계속 이야기를 듣다보니 형태가 없는 정령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정괴는 형태가 없는거야?"

"정괴의 계약자에 따라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형태를 갖추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태어난지 얼마 안된 정괴일 수록 형태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나 어릴때 한강신이 물고기 형태로 된 정괴를 데리고 있는거 본적있어. 계약자의 의지에 따라서 실체화가 가능한 정괴도 있다고 했는데 실체화가 안되는 정괴가 더 많다고들 하지. 네 정괴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한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하필 이때 자리를 비우셔서는...."

산신이 자리를 비운지는 좀 되었지만, 범상강에게는 자기가 필요할때부터 자리를 비운걸로 치는듯했다.

"그럼 계약을 하지 않으면 사라져야  되는거 아니야? 뭐 정괴들이 사는 세상 같은거 있을것 아니야? "

정령에 관한것이라고는 잃다가 포기한 판타지 소설과 예전에 봤던 반ㅇ의 제왕에 나온 정령이 전부인 나는  이것들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물었다.

"니가 살던 세상에 정괴는 사는 세상이 달라?  넌 가끔보면 이해를 하는것 같긴한데 뭔가 어설프게 반만 이해하는것 같드라."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범상강에게 듣는 이해력 부족에 관한 이야기는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이놈은 뇌를 근육과 바꾼 인간의 전형이었다. 아니 영물이었다.

"정괴들 세상이 어디있어. 정괴라는 것은 자연에 속해있는 영인데. 따지자면 원래 걔가 살고 있는 집에 니가 난입한거나 마찬가지지. 여기 원래 정괴집. 넌 손님. 갑자기 손님이 영안 각성하고 집주인한데 너 보인다고 여기서 나가라고 따진는 상황이라고 할까? 이해됨?"

매우 열받게도 바로 이해가 되었다. 내가 집에가야 되는거였구나.

***

나는 말로만 '천천히 정괴와 대화를 시도하면 되지'라고 이야기 하고 호기심에 가득차서 눈을 반짝이며 나를 관찰하는 듀오가 부담스러워서 밖으로 나왔다.

'미치겠네'

내가 집을 나서도 정괴는 강아지처럼 나를 졸졸 따라왔다.

덕분에 나는 정괴와 숨바꼭질 중이었다. 그것은 내가 자기를 피해 뛰어다니는것을 장난이라도 친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빠르게 뛰어가면 그것보다 더 빠르게 따라왔다.

꺄르륵 거리는 정괴의 웃음소리가 정확히 들리는 듯 했다.

그때문에 정괴와 나의 숨바꼭질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결국 패배한 것은 나였다. 그것은 지치지도 않는지 내가 포기하고 바닥에 쓰러졌을때도 한참을 내 주위를 돌더니, 더 이상은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자 고양이처럼 내주변을 맴돌며 살랑거리면서 애교를 부리듯이 나를 감싸다가 흩어지다가를 빈복했다.

정괴가 싫거나 징그러운 느낌은 아니었으나 마음이 그냥 심란했다. 내가 사는 세상에 없는 존재들을 계속 마주치다 보니 점점 집과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이상황에서 거부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이미 보이는데 의미없는 도망이지.'

나는 결국 포기하고 정괴를 쓰다듬으면서 물었다.

"너 내가 좋은거야? 내말 알아듣는거 맞지?"

다시금 정괴의 웃음소리가 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름을 지어주세요."

그렇게 정괴와 대화 비슷한걸 시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고는 더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온몸이 새하얗게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하얗게 보이는 이면의 모습도 그렇지만 나와 비슷할 정도의 매우 큰 키였음에도 호리호리하고 탄력있어 보이는 몸을 가져 덩치가 커보이지 않았고, 크고 길쭉해 보이는 눈이 서늘 하면서도 신비해 보였다.

예뻤다는 소리다.

영안을 뜨기전에 머리가 복잡해질때 마다 산책을 하던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던 뒷산의 큰 나무 아래 공터도 이제는 겨울의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지만,  눈따위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하얗고 살면서 한번도 비슷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로, 말문이 턱 막힐정도로 예쁜사람이었다.

그녀는 다시 나에게 재촉했다.

"정괴에게 이름을 지어주세요. 당신에게 속하면 대화가 가능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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