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안에 눈떠 술법을 익힐 수 있게 되고 환계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뒤, 이 조용한 세상에 소문이 난 것인지 한 번씩 마주치던 주민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눈으로 아는 체를 해왔다. 인간이 환술계에 방문했다고 했을 때 보인 호기심이 넘치는 눈이 아니라 뭔가 좀 더 친근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는데,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이라 뭔가 마음이 묘하면서도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영안이 뜨인 게 환계에서는 당연한 일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영물들도 환수의 피가 섞인 존재들에게만 당연한 일이고, 반요일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영물 중에서도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몇천 년의 세월을 살아서 영물이 된 경우는 또 다르지. 인간은 영안이 뜨이지 않으면 술법을 익힐 수가 없지만 이면 세상의 주민들은 좀 달라. 각각의 능력치가 달라서 익힐 수 있는 술법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저도 태어났을 때는 영안이 닫혀있었습니다. 요력을 각성하고 눈을 뜬 경우이지만 영안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이 아니라 요력을 통해 인식한다고 해야 하나요? 실제로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그래서 구미호족들은 대체로 둔갑술과 은신술 그리고 치유술에 능한 편입니다. 모든 술법에 강한 편이 아닙니다.”
“우리 호랑이족도 비슷하지. 우리는 체내의 기를 사용해 적을 막아내는 주박술이나 신체를 크거나 작게 보이게 할 수 있는 변화술을 위주로 사용하는 자들이 많고 환술은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편이라 익혔다고 하더라도 전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이고. 그러니 인간이 영안이 뜨였다는 것은 이곳 환술계의 주민이 될 수도 있다는 증거라 손님과는 다른 차별점이 있다고 할까? 뭐 그래서 다들 들떠 보이는 거야. 이곳은 어린 영물도 몇백 년마다 겨우 태어날까 말까, 하는 변화 없이 심심한 곳이거든.”
“영안은 그저 실체를 보는 눈일 뿐입니다. 영물들에게는 눈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다른 능력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능력이 없으니, 영안을 뜨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범상강과 초금대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영안에 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호기심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저…. 그럼, 영안이 뜨이면 영물들의 본모습도 보이는 건가? 호랑이라던가 여우라던가 하는 뭐 본모습 같은 거?”
오래 참다가 물어본 질문에 둘 다 뭐 이런 무식한 질문을 하는가 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네가 보는 지금이 본모습이야. 굳이 따지자면 호랑이의 능력을 이어받았으니, 능력을 쓸 때 호랑이로 둔갑할 수 있겠네. 금대는 여우로 변화할 수 있고. 그 능력을 쓸 수 있을 뿐 우리가 실제로 호랑이와 여우는 아니잖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망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그렇지. 그래.”
둘의 설명과는 다르게 내 눈에 범상강과 초금대는 호랑이와 여우로 보였다. 또한, 이세계로 강제전이 되었을때 시간의 파편이 들어간 뒤 한동안 보이던 이상한 빛무리도 영안이 뜨이고 나자, 다시 보이게 능력이 되돌아왔다.
다만 이곳은 거주민들을 보기가 어렵고 그나마 마주치는 영물들의 그림자와 외형을 감싼 빛도 흐릿하고 없는 존재도 많았다. 또한, 영물의 무지개 빛은 특별한 일렁임이 있는것도 아니라 모든 이상한 현상이 다시 보이는 것이 맞는지도 알수 없었으며, 애초에 예루리같은 이상함을 보이던 존재는 환계에 오기전에도 거의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호랑이와 여우가 보이는 것이 아니었으면 이상한 능력인지 아닌지 조차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젠장, 대조군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일반화를 시킬수 있을리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파편이 들어갔던 눈에만 이상 현상이 보였고 집중해서 기를 움직이면 동물로 보이던 흐릿한 형태가 사라졌다.
그래 지금, 이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인 것은 인지했다.
“…….”
“…….”
“이서우?”
“아, 미안. 영안이라는 게 안 보이던 게 보여서 그런지 좀 피곤하네….”
“아아. 그럴 수 있지.”
인간으로서는 한계 밖의 능력을 얻었으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둘의 모습에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당분간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인간이 영안을 얻은 것도 화제가 되는 상태였는데, 저번의 천사장과 예문적의 반응을 생각하면 파편의 능력도 함께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리는 것은 많이 꺼려졌다.
‘당분간은 이 능력에 대해 파악한 뒤에 알릴지 말지를 고민해 보자.’
***
영안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 능력은 도대체 뭘까?
"하아...."
나는 머리가 아파와서 일찍 숙소로 돌아와 이 능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했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내가 머무르는 곳이 산신의 거처인데 갓 능력을 각성한 애송이가 환술계 최강자인 산신이 걸어둔 술법을 꿰뚫고 그 신비를 알아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인간계로 돌아가야 뭐가 문제인지 확인이라도 해볼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산신에게 물어보고도 싶었지만, 가끔씩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지켜보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질문이 꺼려졌다. 산신도 천사장도 알려주지 않는 것이 있는거 같은데 그게 뭔지 알수 없어서 답답하기도 했고, 알수없는 촉에 더이상 깊이 파고들지 않는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일단 내 능력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신들이 인간한테 자세히 설명해주는것도 이상하고.'
나자신을 다독거리며 불안감을 지워내고자 침대에 누워서 배운대로 호흡을 열심히 돌리고 기를 순환시키려고 애썼다. 결국 술력을 빨리 쌓는것이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집중하고 눈을 떳는데 이번에는 은하수 같은 빛 가루가 날아다녔다.
'하, 제발.... 눈떳을 때 정상적으로 살고싶다.'
이 동네는 보이는 것과 관련해서 나한테 억하심정이라도 있는건지 눈만뜨면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에 날아다니는 빛가루는 다행이 기분 나쁜 느낌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는것은 결코 좋은 기분이 아니다.
펄 가루들은 학생때 술자리에 한참 빠져있던 동기가 파티의 분위기를 낸다고 술에 타먹겠다고 가지고 온 반짝이는 먹는 가루처럼 생겼는데, 환계에서 공기중에 무지개색으로 비산하는 오로라들과는 다르게인공적으로 반짝이고 색깔은 짙은 보라색 처럼 보였다. 반짝이 슬라임처럼도 보이는 그것은 그때 먹었던 술맛이 생각나게 하는 모양이었다
맛있어 보였다는 소리다.
짙은 단색으로 반짝거리지 않았으면 모르고 넘어갔을텐데 영안을 뜬 눈은 희미하게 반짝거리는 빛을 놓치지 않았다.
몇번을 당했다고 적응이라도 됐는지, 그나마 예전보다 덜 떨리는 손을 들어 눈앞에 먼지처럼 가볍게 바람을 따라 흘러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반짝이는 펄 처럼 보이는 빛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손을 휘저었다.
'......?!'
망할! 휘젓는 손에 펄가루들이 존재감을 발휘하기라도 하듯이 들러 붙어서 만져졌다.
"아씨! 뭐야 이게!"
보이기만 하고 만져지면 안되는것들이 자신들을 알아본것이 기쁘다는 것 처럼 웃으면서 내 주변을 날아다녔다.
아니 제장할! 웃으면서라니..... 내가 정말로 미처가는것인지 펄 가루 들은 내 주위를 노래라도 부르듯이 웃으면서 부드럽게 움직였다.
피곤해서 일찍 쉬겠다고 들어간 인간이, 밤이 한참 깊어가고 있을때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쉬고있던 범상강과 초금대가 거의 동시에 뛰어들어왔다.
원래 초금대와 나는 같이 손님용 별채에 묶고 있었다. 수련이 시작되고 난 뒤에 효율성을 핑계로 같은 곳에 머무르기를 종용하는 범상강 때문에 초금대가 훈련에 합류하게 된 뒤에 우리는 범상강의 거처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서로 꺼려하던 범상강과 초금대는 생각보다 잘 어울려 다녔는데, 내가 보기에는 또래 관계가 없거나 망한 둘이, 간만에 문제없는 친구 같은 존재를 만나서 한껏 새로운 교우관계에 흠뻑 빠져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가 거의 없는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나이 먹을대로 먹은 둘이 저러는걸 보니 어른들이 뭐든 다 때가 있다 라는 말을 하는것이 이해가 갈 지경이었다.
그런 이유로 귀찮지만 범상강의 거처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범상강의 오지랖이 귀찮기만 했는데 오늘 이 이상한 상황을 겪고나니 고맙기 그지 없었다.
"뭔데? 왜?"
"갑자기 큰소리가 났는데....."
그 둘은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허공을 바라보며 소스라치고 있는 나를 보고 할말을 잃고 쳐다봤다.
"저...저거 도대체 뭐야! 왜 만져져? 귀... 귀신인가?"
놀라서 아무말이나 뱉어내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초금대가 나를 빤히 보더니 대답해 줬다.
"귀신이 산신의 영역에 어떻게 들어옵니까?"
"뭐, 그럼 귀신이 있다는 소리야?"
눈앞에 무해해보이는 펄 가루 보다는 귀신이 무서웠던 나는 그 소리에 더 놀랐다.
"무슨소리야? 명계가 있는데 귀신이 당연히 있지."
"야차도 있는데 귀신은 당연히 있지요. [수미산 여행사]에서 야차군단도 보셨잖아요?"
"......"
'자가출판 책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떠보니 다른세상-13 (1) | 2024.11.12 |
---|---|
눈떠보니 다른세상-12 (2) | 2024.11.11 |
눈떠보니 다른세상-10 (1) | 2024.11.09 |
눈떠보니 다른세상-9 (0) | 2024.10.29 |
눈떠보니 다른세상-8 (1) | 2024.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