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따사로운 봄날 같은 날씨. 인간 세상은 겨울이 한참 깊어졌을 시기인데 환계는 오늘도 제 마음대로 날씨를 선택했다.
뒷산 공터는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의 기분대로 날씨가 정해진다고 하지만, 전체 날씨는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기준을 알수가 없다. 하지만 햇살은 우울한 기분을 날려 보내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좋은 일이 일어날거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이후 살면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를 보내는 것은 이세계에 온 뒤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바람의 기분 좋음도 햇살의 따뜻함도 흩날리는 꽃들의 아름다움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바쁜 일상에 치여 인식조차하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취직 준비도 아르바이트도 자격증 준비도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 수련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아니면 시간이 남아돌았다.
먹고 살 걱정을 하지않고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것은 좋지만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것도 또다른 모순이었다. 재취업만 하면 무조건 쉴거야, 자격증 시험만 통과하면.... 이런 여러가지의 뭐만 되면 아무것도 안하고 쉬고 놀겠다는 수많은 결심도 정작 쉴 수있는 상황이 오자 너무나 힘들었다.
한동안 손 놓고 있던 롤도 해야되고, 롤도 해야 되고 롤도 해야됐다. 그러는 도중에 시간이 남으면 미뤄 뒀던 영화도 봐야했고, 좋아하던 가수가 새로 발매한 앨범 뮤직비디오도 감상해줘야 했다. 물론 여기에 집밖을 나가지 않고 집 꼭 쳐박혀서 주문하는 맛집 배달 음식은 필수였다!
나는 이곳에 와서 확실히 깨닫았다.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는 것과 맞지 않은 인간이었다. 가끔 즐기는 평화는 좋지만 그건 나의 도파민을 채워줄 즐거운 놀 거리가 있을때의 이야기 였다는 말이다! 게임도 없고 영화도 없고 하다 못해 맛있는 음식도 없는 이곳은 평화로운 지옥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까지 맛이 없을 수가 있지? 영물들은 정말이지 모두 미각 상실증 환자들인가? 산군이 와서 좀 개선된 음식을 기대한 내가 그렇게 잘 못 된거야? 더 심해졌어. 이제 거의 간이 안된 것같은데? 아니 이 재료들로 어떻게 아무 맛이 안날 수 있어?"
오늘도 모양은 천상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맛은 무 맛인 음식들을 참기 힘들어져서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나왔다.
식탁 한구석에서 음식과 씨름하고 있던 범상강과 초금대는 나의 불만에 잠시 흠칫 했지만 그러려니 하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진짜 이게 맛있는건 아니지?"
"저번에 오소리 할아범 앞에서는 입을 잘도 놀려대더니 불만은....맛있겠냐? 그냥 먹는거야. 일종의 건강식 같은거라고 생각하면 돼."
"너무 건강식 아니냐?"
"휴.... 여기는 산신의 영역이니 더 맛없는 것입니다. 원래 술력이 높아질 수록 기감이 예민해진다고 하니 산군님이 오셨으니 더 음식이 심심해 질 수 밖에요. 그전에는 그래도 상강님이 있으셔서 맛있는 편이었어요."
그게 맛있는거였다니!!!
"그럼, 인간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계속 이상태 인거야?"
나의 절망에 가득찬 질문에 초금대도 같이 한숨쉬며 대답했다.
"제가 오죽했으면 인간이 되겠다고 [수미산 여행사]에서 근무 하려고 안간힘을 썼겠습니까? 인간계에 있어도 요괴나 영물들 터에서 먹는 음식은 거의 맛이 없어요. 저도 처음에 요력 각성을 하고 너무 힘들었었됴.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일단 술력을 수련하는 동네 음식은 다 별로예요. 명계 음식이 그렇게 자극적이고 몸에 안좋은 맛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명계가 음식은 괜찮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일단 비주얼이 좀... 난 맛은 있었는데 비위가 약해서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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