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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다른세상-16

 반딱이는 무지개 오로라 다리.

애초에 무지개와 오로라가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고, 심지어 반딱이다니. 매끈한 대머리도 아니고 도대체 어떤 느낌이지 상상도 가지 않는 다리. 이름만 들어도 정상적이지는 않을 것 같은 매끈거릴 거 같은 이 다리가 우리의 중간 목적지였다.
 
"진짜 이곳이 무지개 다리로 가는 길이 맞는 거야?"
 
"맞을 텐데? 여기 분명에 분명히 말랑 나무 사이에서 왼쪽으로 66번 돌고 쭈욱 따라 올라가면 무리개 다리로 연결된다고 쓰여 있어. 거기를 지나가면 백곰족 영역으로 진입한다고 쓰여 있는데 이상하네."
 
주변을 아무리 돌아봐도 무지개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고 물론 다리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말랑 나무 사이에서 지시대로 들어오긴 했지만, 거기에 펼쳐진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눈보라와 생명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눈 덮인 평원이었다. 물론 해도 눈 폭풍에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고 주변이 우중충하고 빛은 멀리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백곰의 영역이라고 하여 새하얀 설원을 보고 제대로 진입한 줄 알았지만, 몇 시간째 걸어도 다리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을 때 우리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아무리 걸어도 다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애초에 다리를 지나자마자 마을 상점가로 연결된다고 하지 않았어? 거기서 필요 물품을 갖추고 북극곰족 마을로 이동하는 순록 썰매를 타면 된다고 했는데?"
 
"예? 어디에 그런 말이 적혀 있어요? 이 안내서에는 안 적혀 있는데?"
 
"무슨 말 하는 거야? 산군이 여행 경비 나눠주면서 이야기했잖아? 난 고어 못 읽는데 안내서를 봤겠어? 여행안내서는 도대체 왜 고어로 써놓은 거야? 여기 따로 메모해 놓았어.“
 
”이런 기본적인 고어를 못 읽을 정도의 어린 영물은 여행이 금지되어 있어.“
 
"전 여행이 결정된 날에 산군님 면담 안 갔잖습니까.“
 
초금대는 애당초 이 여행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수미산 여행사]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돌아온 것은 천사장의 단호한 내침이었다.
 
천사장은 초금대를 나를 돌려보내기 위한 여행 안내자로 지정했고 그는 꼼짝없이 내가 이세계를 떠나기 전까지 옆에서 도움을 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모도 피하고 산군도 피하고자 했던 초금대로서는 최악의 인사 발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초금대는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현실 비관으로 인해 매우 비협조적인 상태였다.
 
"범상강, 너도 같이 들었잖아?"
 
내 말에 초금대가 범상강을 돌아봤지만 그뿐이었다.
 
"글쎄, 난 잘 기억이 잘… 그랬던 것도 같고…. 애초에 나는 백로가 5분 이상 말을 하면 집중이 안 돼. 나도 모르게 한 귀로 흘려진다고…."
 
이 망할 호랑이 새끼는 누나인지 동생인지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지면 잔소리로 들리는 상태였고, 산군만 보면 겁에 질리는 초금대는 핑계를 대고 그녀의 호출을 피했으며, 산군의 겹쳐 보이는 그림자에 안간힘을 쓰고 빠져들지 않도록 저항하느라 신경이 다른 데로 가 있는 내가 여행에 관해 설명을 들었으니, 정보는 제대로 구성되니 않고 제각각인 상태였다.
 
"누가 지나가기라도 해야 물어보기라도 하지, 답답하다 답답해."
 
우리 셋 모두 아직 추위를 걱정해야 할 상태는 아니었으나, 몇 시간째 강추위와 깊은 눈밭을 헤치고 다니느라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맞았다.
 
"이 상태라면 몇 시간 이내에 해가 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느낌상 계속 같은 곳을 지나가고 있는 거 같지 않습니까?”
 
“뭐가 보여야지 같은 곳인지 같은 덴지 아닌지 짐작이나 되지. 똑같은 눈 평원밖에 없는데!”
 
"숲 같은 것도 없어? 보통 그 근처에 마을 비슷한 거라도 있지 않을까? 슬슬 체력이 떨어지는 걸 보니 몸을 따뜻하게 해줄 장작이나 쉬는 동안 눈을 막아줄 엄폐물 같은 것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끝이 보이지 않는 피곤함과 막막함에 한숨짓고 있자니, 강풍에 몸이 계속 쪼개졌다 붙었다가 하는 것이 성가셨는지 내 품에 들어와 가슴을 반짝이게 만들던 실바가 숲 이야기를 듣자마자 갑자기 튀어나왔다.
 
실바는 나에게 이야기라도 해주듯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였다. 처음에는 따라오라는 줄 알고 실바 쪽으로 움직였으나 그쪽으로 따라가니 X표를 하면서 거부했다. 실바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대화가 거의 되지 않았으나, 이제 우리는 복잡한 이야기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X와 O 통해 의사전달은 잘 되고 있었다. 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실바의 비약적인 발전에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저거 또 정신 놓고 있는 거 보니까 실바와 대화 중인가 본데? 그만 귀여워하고 근처에 숲 없는지나 물어봐. 정괴니까 그런 거 탐색 할 수 있을 것 아냐?”
 
“따라는 오지 말라면서 이리저리 계속 움직여. 무슨 뜻일까? 허공에 그림 같은 것도 그리는데? 뭐지? 답답해 죽겠네!”
 
“어떤 그림이요?”
 
나는 실바가 그림으로 그리고 유지 중인 그림을 어설프게 따라 했다.
 
“원시 형태의 결계 같아 보이는데?”

창의성은 없어도 알고있는 알고있는 지식은 있는 범상강의 말에 우리 셋 모두 허공에 따라 그려봐도 별 변화는 없었다. 실바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한지 계속 그림을 깜박여 댔지만, 뾰족한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난 아직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그림이 순서가 있는 것처럼 계속 불빛이 움직여. 그 왜 크리스마스 장식 꼬마전구 불빛이나 네온사인 광고 간판 움직이듯이.”
 
불빛이 움직이는 순서대로 그려도 보고 땅에도 그려보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심안은? 그걸로 봐도 똑같나?”
 
당연히 익숙하지 않은 심안은 사용하지 않았다.
 
“흠….”
 
눈보라가 꽤 춥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심안의 능력이 제멋대로 발현되었다가 사라지는 불안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집중을 위해 바닥에 앉았다. 안 그래도 눈 때문에 젖어있던 옷은 엉덩이 부분이 더욱 축축해져 와서 집중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명상하며 심안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자니 원시 결계로 보이는 그림의 색이 동양화를 그려 넣은 듯이 농담이 느껴졌다.
 
“잠깐만, 결계를 그리는 순서가 있는 것 같은데. 큰 원형 작은 원형을 순서대로 그리고 연결 선을 끊기지 않게….”
 
결론적으로 우리는 실바가 알려준 원시 결계를 활성화했다.
 
“우와! 여기 꼭 산타클로스가 사는 동네 같네요.”
 
어릴 때 인간 세상에 살았던 초금대의 감탄에 나도 동의했지만, 인간계 외유를 거의 나가지 않는 범상강은 이해하지 못했다.
 
“산타클로스?”
 
“그래, 저기 전나무 위에 눈 쌓인 거 봐! 어릴 때 주고받던, 엽서에 그려져 있는 그 느낌 그대로인데? 제대로 만화적이네. 저 집들도 아무리 봐도 동양적이지는 않다.”

 

누구……?”

 

“!!!!!!.”

 

문을 열고 나온 집주인은 순록 얼굴을 한 사람이었는데 매우 피곤해 보이는 얼굴에 산타 모자, 줄무늬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순록의 가느다랗고 근육질의 다리에는 두툼해보이는 털 신발을 신은 그야말로 루돌프 그자체였다.

그리고 그는 3D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생겼다. 실제가 아니라 만화주인공이었다.

"어...."

초금대와 나는 그림 속에 있을거 같은 캐릭터가 이야기하는 모습에 얼어 있었지만 범상강은 주민을 만났다는 것에 기뻐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길을 잘 못들어서 헤메고 있는 중인데 혹시 여기가 어디 일까요?"

"$%#×÷$& s@^/÷*?"

몇번을 반복해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결국 범상강이 통역 부적을 꺼내들자 앞의 루돌프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빨간 루돌프 코를 꺼내 코에 붙였다.

"미안하네, 출근 준비를 하다가 나와서 루돌프 코를 잊고 있었네. 여기는 '순록 썰매단' 영화속 순록마을이야. 자네들은 어디에서 왔나? 이 마을은 외부인들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오지인데?"

루돌프의 발광하는 코에 어떤 특별한 기능이라도 있는것인지 순록 얼굴에 붙이자 마자 알아 듣기 어럽던 대화가 통역이 되었다.

"저희는 '반딱이는 무지개 오로라 다리'로 가는 길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거기로 가다가 이 마을에 잘못 떨어진 사람들이 간혹 있었는지 집주인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갈려고 하다가 잘못 들어왔으면 한참을 고생했을텐데 보기보다 능력이 출중한 분들인가 보네요? 그쪽 길 통해 들어오는 방문자들은 대부분이 반죽음 상태로 들어오거나 오래전에 방문하신 분들인데."

섬뜩한 소리를 웃으면서 칭찬처럼 하는 것 보니 귀여워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이면세계 주민이 맞았다.

"그 길이 정석대로 오는 길이 아니면 보통은 어떻게 방문하는 것일까요?"

공손한 초금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줬지만 보통은 영화나 포스터 그림을 통해 쉽게 드나드는 곳 이었다. 나가는 것도 쉽게 나가기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집 떠나면 쉬운 것은 없는 법이었다.

"다리는 순록썰매를 타고도 반나절을 가야 되는 곳에 있습니다. 많이도 돌아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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