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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다른세상-17

[여행자를 위한 펄떡거리는 송어 여관]

이 순록마을에 유일한 여관이라는 이곳은 이 마을 중앙 광장에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한동안 들어가면 나오는 골목길의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행자들이 잘 찾지 않는 동네라고 한 것에 걸맞게 메인 광장의 뒷골목 끝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겉모습은 골목 상점들 중에 제일 깔끔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가게에는 사람들이 방문이 없어서 한적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북적거리며 소란스러웠고 순록들의 열기에 후끈거렸다.

이곳은 맛집 특유의 혼잡함이 느껴지고 맛있는 냄새가 물씬 배어있어서 저절로 입안에 군침이 흐르기 시작했다.

차가운 바람에 얼어있는 줄도 몰랐던 몸은 포근한 공기를 접하고 노근노근 해지고 있었다.

'여기도 실제로 맛이 어떨지는 알수없지. 기대하지 말자.'

나는 이동네 음식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마음 가짐을 유지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동요없이 카운터로 직진했다. 애당초 순록은 지의류인 이끼를 먹는 동물이었는데 이동네 음식이 맛있을 리 없었다.

"우리 한참전에 주문했는데 왜 안나와? 빨리 먹고 장거리 배송 나가야 되는데 얼른줘!"

"12번 테이블 눈 이끼 비빔 특선 감나무잎 추가 2개 !"

"우리는 쑥버무리 찹쌀전과 쑥국 속새맥주 3잔!"

여기 저기서 직원을 불러대고 정신없이 주문을 하는 통에 하루 묵을수 있는지 물어볼 새도 없었고, 여행자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 치고는 사슴처럼 생긴 직원들도 보이고 태어나서 처음보는 동물들도 보였다.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메뉴는 외면하기에 참 어려운 이름들이었다.

"속새 맥주는 뭘까요? 여기 특산물인가?"

"눈이끼 비빔특선은 뭐지? 송어요리는 안 먹나? 왜 아무도 고기는 안시키는 거야! 고기먹고 싶은데!"

☆주방장 특선 송어 요리☆  특히 구이가 맛있음 ♡ 절찬판매~♡

신선한 눈 이끼 비빔밥

달달 몰랑 쑥 정찬

감나무 잎 버무리

최고의 쓴맛보장~ 칡넝쿨 도토리묵 ♡주방장 추천 신메뉴

바람 나무껍질 문어 말이

이것저것 제철 스튜 .....

벽면을 가득찰 기세로 가득 쓰여있는 메뉴들은 저마다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자기를 선택해 주기를 희망하는듯 했지만 이동네 주민들은 채식주의자가 맞는지 풀이 들어간 음식들 위주로만 인기가 많았다.

'사슴과 동물들은 이끼류만 먹는데 채소도 먹는건 설정오류 아닌가? 고기만 안먹다니.... 이상한데서 현실적이란 말이야.'

나는 원래도 긍정적이고 외향적 인간은 아니었지만 요즘은 점점 더 생각이 삐딱해졌다.

우리가 식당의 카운터 앞에서 서있든 말든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식당 이용자들은 자리에서 음식을 받을때 이미 돈을 지불하는 시스템이라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이 카운터는 식당의 관심밖의 존재인듯 했다. 물론 직원들도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저 여기...."

우리가 말을 꺼낼려고 시도 할때마다 그냥 쓱 지나가거나,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하거나 기다리라는 짜증이 돌아왔다.

"아무 곳이나 빈자리 잡고 주문하세요."

"아니, 저희는...."

겨우 들여온 상냥한 목소리에 돌아보며 여관에 머무를 거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했지만 소를 닮은 외형에 새까만 털, 두꺼운 뿔, 반질거리는 까만 눈동자를 앞에서 마주하고 조용히 근처 제일 가까운 자리에 착석했다.

그래 그냥 기다리자. 배도 고프고. 우리는 빠르게 태세 전환했다.

이렇게 바쁜 식당에서는 언제나 인내심이 필요했다.

다른 손님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아보여서 시킨 이것저것 제철 스튜는 약간 매생이 국처럼 생겼고, 맛은 그냥 먹을 만 했다. 우리 일행은 전 부 육식파였으니 인기가 없었을뿐.

손님들이 겨우 조금 줄어들고 노란 가로등들과 알록달록해 조명들이 하나둘씩 켜질때가 되자 의외로 초금대가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긴 기다림에 폭발했다.

"우리 주방장 특선 송어요리와, 문어말이 좀 주세요. 속새맥주도 큰사이즈로 3개. 송어요리는 종류별로 전부다. 그리고 제발 숙박좀 받아주세요!"

저녁이 시작되려고 하니 낮과는 또 다르게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자 -옷차림이 치마와 여러가지 장식물이 늘어났다.- 또다시 계속 기다릴 상황을 우려한 초금대가 소머리 직원에게 크게 질렀다.

오오!

우리는 모두 바쁜 식당이나, 말을 걸어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곳이나, 너무 큰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물어보는 장소를 방문하면 급격히 작아지는 전형적인 젊은 남자들 이었기 때문에 초금대의 용기에 눈으로만 박수를 보냈다.

여행경비는 어쩔려고 저걸 다 지르나 싶었지만 나도 씻고 쉬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초금대가 알아서 해결하겠지.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서 조금만 멀어졌다.

초금대의 주문에 갑자기 식당이 조용해지고 주방에서 독수리 머리를 한 주방장 복장의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송어 특선을 풀코스로 시킨다는 말인가요?"

"네, 그리고 하루 묵어 가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

물론 여관이라 숙박이 가능했겠지만 초금대의 전투적인 질문에 주인겸 주방장인 독수리 머리는 나머지 손님들을 다 내보냈다.

"오늘 장사끝! 더 안받는다고 밖에 문패걸고 지금 주문까지 마감해."

"지금부터 저녁시간인데 갑자기 영업종료라고 하면 우린 어쩌라고!"

불만에 가득찬 손님들의 원성이 이어졌지만 원래 맛집 주인은 독재자였다.

***

"이곳에서 생선요리를 주문하는 손님이 생길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주방장은 영혼의 솜씨라도 발휘할 생각 이었는지 끊임없이 새로운 생선 요리와 해산물 요리를 가지고 기대에 찬 모습으로 얼쩡거렸다.

송어 구이에 정말로 특별히 자신이 있었는지 온갖 야채로 데코된 다양한 음식들이 나왔는데 냄새가 끝내줘서 침이 저절로 고였다. 생선을 별로 즐기지 않은 나도 혹하는 모양새였다.

"이거 먹어봐, 베이컨과 마늘의 조화가 환상이네. 빵위에 생크림 올려먹으면 진짜 별미!"

"이것도 먹어보세요. 이 튀김! 레드와인 소스인것 같은데 정말이지...!"

"맛을 잘 아시는군요!  맛습니다. 튀긴 송어에 아프르몽 와인을 넣어서 브레이징한 요리죠. 향신용 허브를 와인과 오래 조리한 이 소스를 따로 찍어먹어도 맛있습니다."

주방장이 요리에 대해 뭐라 뭐라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몇달째 건강식으로 정신 고문을 당하던 범상강과 초금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둘은 전투적으로 음식을 흡입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풀코스 요리를 시켜 여행경비를 걱정하던 우리에게 초금대는 단호하게 이야기 했다.

"여행사 떠날때 천사장님이 주신 검은패 기억나시죠? 환술계 결계를 열때 사용했던거요?"

" 당연히 기억나지."

"차원 이동할때 결제 수단으로 사용가능합니다. 인간계의 블랙카드 같은거라고 할까요. 이제까지는 경비처리할 것도 거의 없고 여행사에 금방 돌아갈것이라고 생각해서 사용안했지만, 뭐 이제는 제 알바 겠습니까? 천사장님이 경비에 불만있으면 부르던지 자르던지 하시겠지요."

눈이 뒤집혀서 사악한 표정으로 낄낄대던 초금대가 살짝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우리의 블랙카드를 본 여관주인의 눈도 같이 뒤집혔다.

슬프게도 나는 아니었다.

식사하는 우리옆에 붙어서서 자랑스럽게 음식들에 대해 추천을 하던 주인은 옆에서 깨작대고 있던 내가 신경쓰였는지 물었다.

"손님 입맛에는 맞지 않으신가 봅니다. 좋아하시는 음식을 알려주시면 제가 솜씨 발휘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독수리 머리에 두건을 쓰고 애들이나 입을거 같은 만화그림이 그려진 누런색 티셔츠를 입은 식당주인은 그 두꺼워 보이는 근육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드세요? 산음식과는 비교할수 없는 맛입니다만?"

"왜? 엄청 맛있는데? 입맛이 없어?"

주인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산신의 영역에서 음식에 대한 불만이 제일 많았던 나를 기억하는 둘이 동시에 물었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 해야하나 하는 고민을 잠시 했지만 자신의 일에.자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주는 식당주인이 신경이 쓰여 그냥 진실을 이야기 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 문제 입니다. 요즘은 미각이 둔해졌는지 음식맛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요. 식당 음식은 매우 맛있어 보이고 실제로도 맛있는것 같지만.... 피곤해서 그런것이니 신경쓰지마세요. 아, 이 칡너링쿨 도토리묵과 바람나무껍질 문어말이는 괜찮습니다."

내가 병에 걸릴일이 없다는 것과 내세상에서 가져온 간식들을 가끔 자주 나눠먹어서 내 미각이 멀쩡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둘은 별 생각없이 수긍하며 다시 음식에 집중했다.

하지만 식당주인에게 내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 갔었나 보다. 유심히 듣던 그는 물었다.

"손님께서는 도를 닦는 인간 이거나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신 분 이신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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