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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통하는 상담소 7 발걸음에 경쾌함이 가득했다. 손에 쥔 구름 라테도 시미나의 기분처럼 몽실거렸으며, 햇빛 향이 가득한 얼굴은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는 사람처럼 반짝거렸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그녀의 기분을 알아채고 인사를 건넸다. " 시미나 씨, 오늘 좋은 일 있나 보지, 얼굴 좋아 보인다!"라든가 " 오늘 뭐야? 데이트? 데이트? " 라든가, 표현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모두 같았다. 정작 사람들의 호들갑과는 다르게 시미나에게 엄청나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기분 좋은 휴일을 보내고 난 뒤, 일찍 일어나 햇빛 샤워를 하고, 맛있는 점심을 챙겨 먹었으며, 오랜만에 예쁜 옷을 꺼내 입고 자신을 치장한 다음, 여유로운 상태로 좋아하는 음료를 사 들고 산책하듯이 출근한 것뿐이었다. 그래, 그저 그것뿐이..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6 정신없이 몰아치던 전화도 띄엄띄엄 그 수를 줄이고 밤이 점차 깊어져 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던 사람들도 휴식 시간을 가지거나 퇴근하거나 최소한의 하급 관리자와 심야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만 남은, 그야말로 깊은 밤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반대편 구석 쪽에서 이 밤의 고요와는 어울리지 않는 높은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아 진짜, 그럼요~. 퇴근하고 한잔해야죠~. 호호호 호호, 한잔인데 당연히…. “ 하는 이 밤의 고요를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 ”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진짜? 난 몰랐는데…. 맛집…. 진짜…. 호호호 호호“ 뭘 그렇게 모르고 뭘 그렇게 진짜 진짜 궁금한 것이 많은지…. 멀리에서도 뜨문뜨문 들리는 소리에 ‘연애사는 집에 갈 때 너네끼리만 알면 안 되겠니? ‘라는 말이 ..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5 세상의 모든 직장인이 가능하면 상급자와 멀리 떨어져서 앉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이 공간은 특별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관리자들은 신입 관리를 위해서 그들의 자리를 한 곳으로 몰아 두었지만. 신입사원들은 수습 딱지를 떼고 자리 선택의 자유를 획득하자마자 가능한 한 구석 자리로 경쟁하듯이 이동했다. 시미나도 관리자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들 근처에 자리 잡는 것은 많이 꺼려졌다. 그것은 신입 때나 업무에 익숙해진 지금에나 같았다. 관리자들은 각자의 업무 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다수가 질문 하나에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 시미나도 지난 과거에서 관리자였던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질문 하나하나에 비난 폭격을 받는 것은 인내심을 요하는..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4 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지 해가 길어지고 있었다. 겨울에는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나 깜깜한 시간이라 나무에 새순이 돋았는지, 새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서 그야말로 자기 존재감을 마구 드러내는 산발한 머리와 화장기라고는 약에 쓸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맨얼굴, 노숙자로 오해받을 만큼 후줄근한 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운동복 따위의 고급스러운 단어로 절대 표현될 수 없다)이었지만 해가 길어지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이 시간을 맞이하고 나니 시미나는 더는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왜 상관해, 다시 볼 것도 아닌데 ‘라고, 당당하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시미나는..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3 시미나가 심야시간대의 전화 상담사가 된 것은 전혀 특별할 일이 없는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원래 하던 일에 진절머리가 난 시미나는 일을 그만두고 3달 가까이 밥 먹는 것 책 보는 것, 영화 보는 것 등의 모든 일을 침대 위에서 해결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의 시미나는 우울증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상실은 그게 어떤 종류이든지 삶에 흔적을 남긴다. 그녀가 어떤 종류의 사람 인가와는 상관없이 병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게 마음의 병이든 육체의 병이든. 번 아웃이 왔다면 이해가 가지만 시미나가 우울증이라니, 그녀의 옛 동료들이 알면 어처구니없어할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의 이해와는 무관하게 그녀는 집안도 아닌, 침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았고, 몇 년간 제대로 못 잔 잠을 한꺼번에 보충하듯이 거의 기..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2 이 안내서는 제목부터 글러 먹었다고 시미나는 생각했다. 원활한 상담을 위해 제작된 안내서는 이해하기 쉬운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39260이라는 어마어마한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이해하기 쉬운 과, 39260번의 괴리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 40,000번이 넘지 않으면 쉽다고 생각하는 미친놈인가? 오운다르는 또 도대체 누구야 라는 비틀어진 생각을 하면서 책처럼 생긴 이 아이템을 뒤적거리는 중에, 안내서 위로 슬그머니 올라오는, 파스텔색의 아이싱이 듬뿍 올라가 보기만 해도 행복해 보이는 쿠키에 고개를 들었다.  "시미나 씨 오랜만! 이 안내서 발간한 사람 너무 어이없지 않아?""훌팩씨였구나, 난 또 누구라고" 시미나는 간식으로 먹으려던 당근은 가방에 던져버렸다.  "휴가 갔다 왔어요? 한동안 안 보이던데.. 더보기
말 안 통하는 상담소 1 프롤로그- 말 안 통하는 사람들을 위한 16920번째 우주 상담소 관리를 100년은 하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포니테일 남들 눈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직장인의 옷차림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무릎 튀어나온 후줄근한 체육복 바지에, 편안이라 말하기 애매모호한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의 시미나는 오늘도 촘촘히 줄지어져 있는 칸막이들의 구석진 자리에 영혼 없이 앉아있었다. 평상시에도 딱히 일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은 도통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옆자리의 직원이 혼잣말하며 중얼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할 때마다 뮤트 버튼을 눌러가며 중간중간 욕을 하고 통화를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알 수 없는 혼잣말로 중얼대며 몸을 까딱일 때는 어찌나 정신이 없는지 당장 자리를 .. 더보기
글쓰기 강의를 신청했다 재테크도 강의도 지겹고, 취미생활도 지루하고 삶이 너무너무 무료해서 의욕상실이라 잉여인간으로 살고 있는 것조차 지치고 있는 중에 친구의 재촉으로 이전에 포기했던 자가출판 책 쓰기 강의 듣기를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 나태함의 병을 떨치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의욕과 열정이 가득했던 젊은 시간으로 돌아가고.... 아니 이건 싫고,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찾는 여정을 완료하고 싶은 마음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