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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떠보니 다른세상-15 햇빛이 따사로운 봄날 같은 날씨. 인간 세상은 겨울이 한참 깊어졌을 시기인데 환계는 오늘도 제 마음대로 날씨를 선택했다. 뒷산 공터는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의 기분대로 날씨가 정해진다고 하지만, 전체 날씨는 어떻게 정해지는 건지 기준을 알수가 없다. 하지만 햇살은 우울한 기분을 날려 보내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좋은 일이 일어날거 같은 긍정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이후 살면서 가장 평화로운 일상를 보내는 것은 이세계에 온 뒤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바람의 기분 좋음도 햇살의 따뜻함도 흩날리는 꽃들의 아름다움도 이곳으로 넘어오기 전에는 바쁜 일상에 치여 인식조차하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취직 준비도 아르바이트도 자격증 준비도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 수련을 하느라 보내는 시간이..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4 최근의 나의 작은 소망은 배운것을 제대로 소화하기 전에 더는 모르는 뭔가가 튀어나오지 않는것. 나는 살면서 엄청나게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살아온 적도 없고 그렇다고 반항적으로 세상의 규칙을 위반하면서 살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있는 듯 없는 듯 튀지않게 적당히 별 불만없이 대충대충 살았다. 나쁘지 않은 머리는 투자대비 효율이 나쁘지 않았었고, 화목한 가정에서 고생이라고는 거의 해보지 않고 자란터라 뭔가를 이룩하겠다는 욕망도 별로 없었고, 무의식 한편에서는 평생을 이렇게 살겠지라고 생각했다. 좌절의 순간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부터서였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회는 정말이지 차가웠다. 일하는 하나하나마다 꼬투리를 잡고, 전부 다 상사인 놈들은 각자 다른말을 했다. 누구는 이렇게 하라 또 다른 누구는 저..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3 바쁘고 분주한 하루였다. 갑자기 생긴 반려동물? 반려 정괴? 아무튼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새 친구로 인해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이름을 지어준 게 잘한 건가? 잘 안 알려진 비밀병기 같은 거로 생각했는데 도움이 되는 건 맞는 거겠지?' 정괴가 나에게 속하게 되어서 내 말을 듣는 것이 이득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는 했지만, 새 친구는 계약하기 전부터 자기가 원하는 것은 대놓고 어필하는 똑똑한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반짝이라고 이름 짓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정괴의 거부로 실패로 돌아갔다. 잘못된 작명으로 인해 정괴도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성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반짝이라는 말을 언급하자 정괴의 반짝이가 커졌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하는..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2 [정(精) 또는 정괴(精怪) : 정령이라고 알려져 있음.] 요즘은 매일 매일이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것 같다. 자격증 시험을 공부할때만 하더라도 일상이 너무 규칙적이고 변화가 없어서 사는게 재미가 없다고 생각 했는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되는 매일을 살다보니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역시 사람은 잃어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곤했다. 사실 최근에는 잠을 거의 못잤다. 눈을 뜨면 빛무리가 날아다니고, 눈을 감으면 웃음소리가 노래소리처럼 계속 들려왔다. 이것들을 처음 봤을때 범상강과 초금대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미쳐가고 있거나 악령같은 것이 씌인것이 아닌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산신의 영역에 잡귀가 들어올 수 있을리가 없고,..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1 내가 영안에 눈떠 술법을 익힐 수 있게 되고 환계의 실체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뒤, 이 조용한 세상에 소문이 난 것인지 한 번씩 마주치던 주민들이 지나다닐 때마다 눈으로 아는 체를 해왔다. 인간이 환술계에 방문했다고 했을 때 보인 호기심이 넘치는 눈이 아니라 뭔가 좀 더 친근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는데,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이라 뭔가 마음이 묘하면서도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영안이 뜨인 게 환계에서는 당연한 일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영물들도 환수의 피가 섞인 존재들에게만 당연한 일이고, 반요일 경우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 영물 중에서도 태어난 것이 아니라 몇천 년의 세월을 살아서 영물이 된 경우는 또 다르지. 인간은 영안이 뜨이지 않으면 술법을 익힐 수가 없지만 이면..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0 범상강과 기 싸움을 하고 오소리 영감에 대한 태도 지적을 한 것으로 한동안 피곤해질 걱정을 했지만, 생각보다는 별일이 없었다. 그날의 범상강은 멍하니 있다가 휘적휘적 사라지더니 다시 수련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만났을 때는 약간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처음의 어이없어하고 거부반응을 보이던 환술에 관한 교육도 멀쩡하게 시작되었다. 호랑이 족들 사이에서 오냐오냐 떠받들어져 살아왔던지라 아무도 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 적이 없어서 나의 지적에 다소 충격을 받은 모습처럼 보였지만 내 생각보다 범상강은 올바른 영물인 듯했다. 물론 체력 단련을 그만두는 일도 없었다. 몸을 만드는 것에 대한 범상강의 철학이 확고하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뭔가를 배워서 이곳에서 탈출한다는 내 목표에는 매우 잘 부합하는 ..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9 당장 이라도 뭔가를 하지못해 조급증을 내던 이서우의 불안감도 이곳에 도착하면서 조금 가라앉았다. 산의 정상으로 올라올 수록 힘이 넘치고 정신이 맑아진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조, 답답, 공포등의 모든 불안증은 정기가 가득한 설악산에서 머리속에 끼어있던 안개가 사라진듯 차분히 마음에서 정리가 되었다. 머리로도 마음으로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억울함이라던가 하는 심마의 찌꺼기가 사라지고 나니 이제는 허탈함과 탈력감 같은 기분이 다가왔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술법을 배울수 없단다." 바람에 눈처럼 날리는 꽃잎을 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던 서우는 잠에서 깨어나듯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산신님, 오셨습니까?" "그래, 생각의 찌꺼기를 털어내는 것은 좋지만 한 생각에 매몰되는 .. 더보기
눈떠보니 다른세상-8 초금대는 반요 중에서도 요괴의 힘이 강한편이라 인간들과 비교할수 없는 힘을 지녔다. 그래서 천사장이 이서우를 설악산 산신에게 데려다주고 당분간 잘 지켜보고 도와주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자신이 짐이 되는 상황에 대해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초금대의 어머니는 흑 구미호족들 중에서도 차기 족장후보로 소꼽히고 있던 후계자 중에 하나였는데, 5백년 가까이 살 동안 외유도 거의하지않고 수련만 했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요력을 쌓아 여우구슬을 완성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인간을 선택해 결혼을 하고 인간이 되기를 결정하여 족장의 후계자가 되는것을 쉽게 포기했을 때 부족의 사람들의 원성이 매우컸다. 강한 족장의 등장은 전체 부족민들의 힘이 강해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초금대의 조부모의 분노는 일반 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