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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출판 책쓰기

눈떠보니 다른세상-15-1

"규환지옥 내장탕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진짜일까요?"

"거기 [추도옥]이라고 유명한 국밥 전문점이 있거든 맛은 있는데 입맛은 진짜 떨어져. 끊임없이 구슬픈 고함소리가 들리거든. 그거 계속 듣다보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나. 나는 차라리 초열지옥 [사견철판]이라는 꼬치구이 철판요리집이 더 나은거 같드라. 거긴 좀 더워서 그렇지 지옥곡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거슬리는 소리는 없어. 싸우는 놈들때문에 정신없어서 그렇지. 빙결관련 물건이나 부적을 사용하면 쾌적하게 음식을 즐길수 있어."

명계를 포함한 바깥 음식에 관해 토론이 끊이지 않는것을 보면 나만 특히 예민한것은 아니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인간, 영물, 요괴 남자 셋이 모여서 하는 음식 타령과 맛집 토론같은 전혀 건설적이지 않은 대화에 한숨이 나올지경이었다.

육체단련을 위한 수련은 계도에 올랐고 정신 수련은 시간이 걸리는 거라고 했으니 잘되고 있는거 맞겠지?

***

뭐든 정석이 좋은것이기는 하지만 어디에나 치트키는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특별한 존재들에게도 통용되었다.

"재료를 찾아오라고요?"

"그래, 정신 수련을 시간 들여서 하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방법도 있어. 처음 결계진을 배울때는 결계를 정상적으로 구현해 내더라도 안정화가 어려운데 그걸 돕는 재료들을 사용하면 정신 방벽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거든. 북극곰 영역에서 구할수 있는 만년 빙하석을 구해와. 그러면 몸에 술법을 익힐수 있는 통로를 열수 있을거야."

"...저, 혼자 다녀오면 되는 걸까요?"

내 질문에 범백로의 표정이 미묘해 졌다.

"북방의 문을 지키는 천왕이 부탁한 인간을 혼자서 보낼리가? 자네와 초금대는 원래 차원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세트라고 생각을 해. 그는 자네가 돌아가기전까지 이곳에서 보호자 역할을 할꺼야. 범상강도 같이 갈 테니 알려주고. 좀 모자르는 형제이기는 하지만 무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거야."

"같이 가려고 하지 않을텐데요...."

"......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범상강이 같이 가지 않으려고 할거라는 나의 대답에 범백로의 눈썹사이가 잠시 움찔거리는 듯 했지만 금방 표정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산군의 표정에서 우리집 호적메이트의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가뿐하게 외면했다.

며칠뒤 어디서 심하게 얻어맞은거 같은 너덜너덜해진 모습으로 수련장에 나타난 범상강은 매우 의욕적으로 이번 여행을 서둘렀다.

산군이 내 형제가 아니라 참 다행이었다.

***

내가 이세계에 머무르는 동안은 꼼짝없이 나의 보호자로 여행사로 돌아갈 수없다는 현실을 한동안 받아들이지 못해 천사장을 만나러 [수미산 여행사]까지 다녀온 초금대는  내가 이곳에 와서 겪은 분노의 5단계를 겪고 있었다. 그는 아무래도 부정과 분노 그 사이 어디쯤을 헤메고 있는거 같았고, 중2병에 걸린 10대처럼 보였다.

"내 보호자 역할을 하는게 그렇게 싫어? 나름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다?"

나의 돌직구에 범상강은 불어터진 얼굴로 웃어댓고, 초금대는 매우 당황해 했다.

"아니 그런것이 아니라...."

잠시 당황한듯 침묵하던 초금대는 길게 한숨을 쉬고 터덜터덜 사라졌다.

재도 처음 만났을때는 까칠한 외톨이로 보이더니 이제는 다른사람의 기분을 생각해서 입을 다물줄도 아는 모양이었다.

할말은 많지만 속으로 참으며 터덜터덜 걷고있던 초금대는 다른 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설악산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빌어먹을.'

사장이자 북방신에게 잘보여서 예문적처럼 인간세상에 얼른 나가서 오래 머물고 싶어서 순순히 받아들였던 임무는 계속 그 기간을 늘여서 환계에서 수련하다 힘들어서 죽게 생겼다.

돌아가는 판을 보니 자신은 이서우가 돌아가기 전까지 꼼짝없이 그에게 묶인 상태였다. 이서우와 범상강과 함께 지내는 시간은 생각과는 다르게 즐거웠지만, 그는 인간 세상에 머물고 싶었고 수련도 그만하고 싶었다.

요괴의 피를 각성하고 난 뒤 [수미산 여행사]에 취직하기 위해 온 힘을 다 쏟아부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다니,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자유로웠을때는 어디에서 살던지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강제로 무언가를 못하게 되자말자 인내심이 바닥이 난듯 조급함이 생기는 것은 지성을 가진 존재의 본성임에 틀림이 없었다. 사실 인간세상에 못가는 것도 환계에 머물러야 되는것도 다 핑계였다. 사실은 그의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모가 이곳에 머무는 것이 문제였다.

며칠째 초이호를 피해 도망다니고 있지만 결국 환계에 머문다면 영원히 피할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계때문인지 마음이 무거운 것인지 육체를 압박하는 압력이 커지는 기분이었다.

'잠깐, 이러다가 이서우가 출신차원으로 돌아가는것을 포기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러면 여행사로 돌아갈 수 있는건가? 그래, 여기에 터를 잡으면 그럴수도.... 무단 이주자가 거주 허가가 나오나?'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 이서우가 진짜 못돌아 가는 경우가 발생하면 백년이 아니라 몇천년은 따라다녀야....

갑자기 한겨울에 냉수 마찰을 받은듯 정신이 반쩍 들었다.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이서우는 특별관리 대상이었다. 아무리 초금대가 상급 정보에 접근할 수 없는 따까리라고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도 이서우가 특별케이스라는 것을 알아 보지 못할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일단 어떻게든 이번 임무를 잘 처리하자. 떠나기 전까지만 이모를 잘 피해 다니면 또 어디 다른차원으로 임무를 받아서 떠날꺼야. 당분간만이라도 잘 피하면 될꺼야.'

초금대는 다른 이들이 잘 파둔 굴로 알아서 척척 몰려서 들어갔다. 주변의 상황에 끌려 다닌다고 생각 했을때와는 다르게,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자마자 의욕이 넘쳐흘렀다.

'이서우 이 인간은 술법도 안배웠는데 도대체 나를 업고 어떻게 결계문을 통과한거야?'

설악산과 연결된 결계문은 육체단련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초금대의 입장에서는 맨정신에 열어도 썩 내키지 않는곳이었다.

짧은 외유를 끝내고 다시 주변을 열심히 살피며 범상강의 거처로 사라지는 초금대의 뒤로 흐릿한 그림자 둘이 따라붙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진짜 단순하기는. 쟤 진짜 똑똑한거 맞어? [수미산 여행사]출신이니 똑똑하긴 할텐데.... 어떻게 이호 너를 피해다니면 안들킬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쟤는 배우는 머리만 좋아요. 요괴인데 융통성이라고는 없이 자기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거죠. 인간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있다고나 할까요. 천사장이 자신을 왜 인간한테 붙였는지 생각은 해보지도 않고 억울하기만 하겠죠. 제가 자기를 못찾고 있을때 의욕적으로 탈출하려고 할테니 안 만나러가는거라는 상상도 못할테구요."

"인간이 되는걸 반대할까봐 저렇게 도밍치는 거야?"

"지가 엄청똑똑하고 냉정하다고 생각하는데 친한사람들한데 마음이 약하거든요. 전 인간이 되는걸 싫어하는게 아니라 지금 선택하는걸 반대한것 밖에 없는데.... 저애는 좀더 세상을 겪어봐야 해요. 자신이 진짜 원하는것이 뭔지 모르고 반대를 반대하는 어린애라고 할까요."

"...... 그래 내가 누굴 평가하겠어. 내 혈육이나 제발 말좀 들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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