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 꼭 노력한 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옆옆 동네의 집값이 재개발 확정으로 폭등하거나, 나는 매주 복권을 샀지만 얼떨결에 나를 따라 처음으로 산 친구가 2등에 당첨되거나, 우리 회사의 최고 미인으로 유명한 직원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반쯤 불어터진 진빵처럼 생긴 우리 과장의 와이프가 된다고 청첩장을 돌리는 이해할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일에서의 중요한 교훈은 노력이 아니다. 일단 어떤 일이 생길려고 하면 뭔가를 질러야 한다. 집을 사야 집값이 오르던지 떨어지던지 할것이고 복권을 사야 당첨이 될것이고 일단 고백을 해야 받아주던지 말던지 할것이 아닌가.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고 난 뒤로는 세상일이 그렇게 억울하거나 답답함에 가슴치는 일이 좀 줄었다. 일단 나는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도 했는데 안된것은 이라는 의문이 드는데 그건 당신의 불운에 심심한 위로를 전하기 전에 설마 한번 시도하고 안된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백번 천번을 시도하면 적어도 한번은 이루어 지겠지. 지금 까지 수거 못한 시도는 미래에 한번은 걸릴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이게 북극곰 영지 특산물인 만년 빙하석 가루라는 말인가요? 이게 원석이고요?"
"그래, 결계를 그리는데 사용하는 만년 빙하석은 이거 밖에 없어! 이동 결계진 배울려고 하는거 맞지?"
응, 아니다.
"내가 이동 결계진은 잘 가르쳐줄수 있는데 이걸로 배워 보는건 어때? 자네들 덕분에 이번해 물류는 걱정 안해도 될거 같고, 이야기 그림자에게 빼앗긴 시간도 찾아서 별일없이 금방 회복된것도 고마운데 어떤가? 그대신 그 엑X과 관리 프로그램은...."
밀에게 무슨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야기 그림자를 잡고난 뒤 깨어난 결계진 담당자 도니는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만년 빙하석으로 이동 결계진을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초금대가 형상변환술로 이곳에 맞게 변화시켜둔 내 컴퓨터를 탐내는것이 눈에 보였으나, 계속 복제되는 컴퓨터야 뭐 상관없었다.
"우리가 결계술에는 별 재주가 없어서요. 그리고 우리 막내가 이전에 처음으로 결계술을 배우기 위해 처음으로...."
범상강이 슬쩍 거절을 입에 담으려 하는듯이 보이자 마음이 달은 요정들은 적극적으로 여러가지 조건을 내밀었다.
"아 물론 술법을 처음 배울때 통로를 여는것도 해줄수 있고, 결계진을 그릴때 사용하는 여러가지 특별한 재료들도 채워 주겠네. 아 그래, 보니까 막내 형제가 정괴와 계약도 한거 같은데 정괴를 키울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지! 어떤가?"
"정괴를 알아봤다는 겁니까? 정괴를 키울수 있다고요?"
"정괴는 자연의 에너지가 유형화된것이니 요정족이라면 당연히 알아보지. 이야기 그림자를 잡고 난뒤 생긴 시간석도 주겠네. 그걸 먹이면 한층 대화가 쉬울거야."
"그건 어떻게 먹이는 건가요?"
"아 물론 결계진을 그려서 흡수시키는 것이니 당연히 결계진 부터 배워야지."
눈을 찡긋거리며 친한척을 하는 밀이 조금 거슬렸지만 우리 셋 모두 정괴를 키우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라 약간의 고민을 하는척 한뒤 받아들였다.
북극곰 영역에 가지도 않으니 시간은 남아도는 상태라 사실 별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당황스럽게도 결계진을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것은 일종의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연산과정이 중요했는데, 중학교 수준의 수학적 능력만 있으면 거의 문제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문과를 나왔다고는 하지만 과외 알바로 밥을 벌어먹고 산적도 있는데 이정도 수준의 수학을 못하는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우등생이 되었다.
"아니 이걸 어떻게 이해를 못해?"
수학 계산에 대해 감도 못잡는 범상강에게 화를 내니 눈만 멀뚱거리고 쳐다보던 그는 도니가 보지 않을때 결계를 구현해 냈다.
"그런걸 왜 계산함? 그냥 인식이 되는건데?"
"!!...."
당황한 내가 쳐다보자 나와 눈이 마주친 초금대가 고개를 슬쩍 저으며 부정했다.
"상강님이 이상한 겁니다. 요괴들은 못해요. 영물들은 태어날때 부터 이미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는 다른 존재입니다. 결계진 인식 같은건 숨쉬듯이 자연스러운 거예요. 술법을 구현하는 것도요."
" 근데 왜 공간이동 결계를 못해?"
초금대의 설명이 이어지자 나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추궁이 이어지자 범상강은 거리를 벌려 멀어졌다.
"...그...필요가 없으니까 배우지 않으려고 하는게 아닐까요? 인식 하는 과정도 결국은 결계에 대해 인식을 하기위한 시도가 필요한데..."
"다들린다."
점점 줄어드는 초금대의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귀신같은 육체 능력이었다.
'결국, 결계진 인식을 위한 시도를 게을러서 안하는게 문제라는 뜻이잖아.'
저런 능력을 가졌는데 육체 수련만 하는게 말이돼? 산신과 산군이 모두 하나같이 범상강을 영역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것이 이해가 될거 같았다.
'아니, 내가 이걸 이해할 필요가 있나....'
어쨋든, 나는 범상강은 제외하고 초금대와 열심히 결계진을 그리는 법에 대해 배웠다. 요정족은 우리가 여행중인 여우 요괴들인줄 알았는데 결계진을 습득하는 속도가 빠르자 놀라워했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공교육을 받은 초금대와 얼마전까지도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느라 중학 수학 수준은 어렵지 않은 내가 배우는 것이니 당연히 배우는 속도는 빠를 수 밖에 없었다.
나 뿐만 아니라 초금대도 의욕적으로 계산법을 배우는것이 알수없는 위안을 주었다. 그런데 왜 대다수의 요괴들은 이런 기본적인 계산을 이해 못하는건지....
"자네들 정말 대단하구만. 여우 요괴들은 둔갑술과 형상변환술만 잘 하고 결계술에 재능이 없다고 하더니 전부 헛소리였어!"
초금대와 나의 성취에 감동한 도니가 감탄을 내뱉으며 기뻐했다. 물론 범상강을 흘끗 보기는 했지만... 그건, 묻어두도록 하자.
우리의 빠른 성취에 감동한 그는 공간이동진을 그리는 법을 배운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술법 통로를 여는 결계진을 시도해 보자고 제안했다.
나라면 계산하는데 전혀 문제 없을거라는 장담에, 미룰필요가 없던 우리는 바로 시작했다.
술법 통로진이라 이름 붙여진 이 결계진을 그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결계진은 그 모양을 흉내내어 베껴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각각의 선이 수식안에서 정확한 공식에 따라 선이 그려지는 것이라 그림과는 다르게 한치의 오차라도 발생하면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동안 숫자와 씨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수학이 싫어서 문과에 간 사람이라고!'
내 내면의 절규는 커져만 갔지만 손은 착실히 수식을 풀어내고 있었다. 나보다 더 괴로워 하는 초금대를 보며 위안하는 하루가 늘어만 갔다.
***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을때 만년빙하석과 보름달이 닿지 않은 그림자에서 자란 스넵드래곤 콩깍지라는 이름의 해골의 닮은 금어초의 씨앗을 7:3비율로 갈아서 섞은 후, '용기'라는 이름의 글리터 포션을 섞은 액으로 결계진을 그리면 됐다.
나는 이 결계진 위에서 문학적인 길고 지루한 주문같은것을 외우는 과정이 있는줄 알고 약간 기대를 하긴 했지만 그런건 전혀 없었다. 익스펙토 X트로놈 도 없었고, 마법사 지팡이도 없었다.
이번에야 말로 어릴적 로망이 실현되는줄 알고 기대했지만... 여긴 마법같은 술법이 존재했지만 묘하게 현실적이었고, 특이하게 이상적이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마법 주문은 없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바보 취급은 피해갔다는 것뿐.
'용기' 글리터 포션은 뭘 갈아 넣어 만들었는지 오묘하게 반짝거렸고, 만년빙하석 가루와 합쳐지자 실바만큼 반짝거렸다.
결계진을 그리는 데는 좁고 길쭉한 아이스바 나무 막대기 보다 조금 짧은 정도 크기의 얇은 판으로 보이는 막대기 같은것을 사용했는데 '해미'라는 이름이 붙여진 술법용 아이템이었다.
이 판은 여러가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다고 했는데, 도니는 자신의 '해미'를 보여주면서 뿌듯해 하며 설명했다. 짙은 고동색의 단단한 나무 같은 느낌에 만져보면 나무껍질의 울퉁불퉁함이 표면에 그대로 느껴졌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매끈한 나무판인것이 신기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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